제 5 장

8

 

뒤쪽 천정밑 자그마한 뙤창으로 희읍스름한 새벽빛이 흘러들자 좁은 독감방을 사방으로 둘러막은 검스름한 벽들이 그 어떤 기계장치에 의하여 서서히 미끄러져나오는것 같았다. 수인을 압살하려고… 숨이 막혔다.

권영벽은 와뜰 놀라며 일어나앉았다. 그 무서운 환각을 쫓아버리려고 헛기침을 두세번 깇었다. 그러자 벽들은 주춤거리다가 제자리로 물러서는듯싶었다.

권영벽은 크게 뜬 눈으로 그 벽들을 둘러보았다.

숱한 수인들의 한숨과 눈물과 번민이 슴배여들어 거멓게 쩌들고 번들거리는듯 한 그 벽에서는 융융거리는 말소리, 속삭임소리들이 끝없이 흘러나오는듯… 그대는 이제 죽는다, 너무 괴로와말라, 죽음이란 누구나 다 한번 가야 하는 길이니… 단지 이승에 남는 혈육들의 바래움을 받지 못하고 그네들한테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는것이 원통할것이다, 그대여, 나한테로 돌아앉아 하고싶은 말을 다하라, 그러면 내가 이 모진 세월이 지난 다음 꼭… 꼭 전해주리다. …

널마루밑에서 쥐들의 부스럭소리, 찍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법정은 그에게 사형이라는 극형언도를 내릴것이며 집행유예도 줄것이다. 인도정신에 따르는 자비심이 아니라 피를 말리우며 죽음을 기다리는 그한테 오래도록 고통을 주다가 죽여버리자는 복수심의 발작에서 그럴것이다.

어느날인가 밤중에 복도의 저쪽구석으로부터 가볍고 잰 발자욱소리가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오랜 옥중생활에서 청각이 비상하게 예민해진 그는 그것이 당직간수의 걸음새도, 발자욱소리도 아니라는것을 인차 간파했다. 몸이 육중하면서도 발걸음이 가벼운자가 한쪽다리를 약간씩 끌며 다가오고있었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 발자욱소리는 지나가지 않고 그의 독감방앞에서 멎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감방천정밑에 드리운 전등이 켜졌다.

촉수 낮은 전등이나 눈이 시였다.

권영벽은 실눈을 짓고 감시구멍쪽을 바라보았다.

감시구 저쪽에서 안경알이 번뜩이고 속살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보시오. … 여보시오. 이리… 이리 좀 가까이 와요. 권선생…》

그가 어떤자이든 관계없이 어쨌든 자기를 찾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왔다.

권영벽은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감시구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나는 이 형무소안에 있는 양복제작소 재단사웨다.》

《…》

《재작년에 7년언도를 받고 들어왔시다. 마음놓으시오. 간수랑 다 통하고 들어왔시다. 부전옥나리 부탁을 받고왔는데… 그 반백의 머리칼이 참 품위가 있소. 뽑아서 팔지 않겠소? 예? 팔면 매일 사식을 받아먹을수 있소. 눈알만 팽글팽글 돌아가면 령어생활도 괜찮지요.》

언젠가 여기서 들었던 이야기가 피뜩 떠올랐다.

《음…》

《자, 제꺽 흥정합시다.》

《한오리에 얼마를…》

《2전… 2전 5리…》

권영벽은 껄껄 웃다가 갑자기 정색해지며 분격을 터뜨렸다.

《엑- 고약한 놈, 내 사색과 번민, 인생로가 어렸는데 2전 5리야? 엉?!》

《아니, 선생은 고명한 혁명가여서… 잡범들건 5리도 안돼요.》

《썩 물어가! 백만원에도 안돼!》

그러자 놈팽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그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모두숨을 후- 내쉬였다.

《그럼 다른데로 가보지유. 사실은 여기 형무소에 그런 모발은 얼마든지 있어요. 모든 죄수들의 머리를 다 삭발하지만 사형수나 사형언도가 명백한 사람들의 특별히 좋은 머리칼은 빡빡 깎아버리지 않고 놔둬요. 잘- 자라게… 이건 사실 부전옥나리가 그것들의 대가리에 〈갈농사〉를 짓는거지유. 〈초물공예품〉의 원료로 쓰지요. 물론 선생님은 아니고… 선생님이 공판투쟁을 통해 하도 고명해졌기때문에 사볼가 해서… 에-참! 사식이랑 생각나면 다시 생각해보시유.》

《에익, 고약한 놈. 썩 물러가!》

권영벽은 모욕감에 우들우들 떨다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리로 갔다.

사흘뒤 깊은 밤중이였다.

복도에서 숱한 발자욱소리들이 어지럽게 울리더니 감방문들이 여닫기는 소리, 욕지거리소리, 비명소리들이 났다. 이윽고 그 소리들이 잠잠해지는듯 하더니 그의 감방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갓-》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웬 청년이 발길에 채워 날아들어와 마루바닥에 구겨박혔다. 청년은 머리를 싸쥐고 이리저리 딩굴었으나 목놓아울지도 못하고 찍소리 한마디 없었다.

그는 변기통곁에 꿇어앉아 두팔로 싸안은 머리를 마루바닥에 박은채 바위돌처럼 굳어져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이따금 잔등에 푸들푸들 경련이 일뿐…

독감방의 주인인 권영벽은 청년한테로 앉은걸음으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냄새나는 변기통곁에서 저쪽구석으로 옮기라고 나직이 일렀다.

청년은 화다닥 놀라 돌아보더니 기겁하여 그쪽으로 황황히 옮겼다. 그리고는 벽에 등을 붙이고 헐썩거리며 겁먹은 눈으로 권영벽을 지켜보았다. 감시구멍으로 독감방의 어스름속에 흘러드는 한가닥 빛줄기에 희미하게 드러난 청년의 파리한 얼굴륜곽, 희번뜩이는 눈… 권영벽은 그의 눈에 자기의 화상이 어떻게 비치고있는가를,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 저세상의 망령같은 섬찍한 존재로 비쳐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청년은 벙어리인지, 아니면 극도의 공포심에 모든 감각이 마비되여서인지 집은 어딘가, 무슨 혐의로 들어왔는가, 몇살인가 물어도 대답을 못하고 턱만 덜덜 떨었다.

권영벽은 그를 더 자극하지 않으려고 벽쪽으로 돌아누워 더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청년은 안절부절못하고 자주 누웠다앉았다 하는가 하면 자정이 지나서부터는 어스름속에서 몽유병환자처럼 넋없이 오락가락하며 입속으로 끝없이 중얼거리고 누구를 저주하는지 이를 으드득… 갈며 휘파람 같은 소리로 천벌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찾으며 소리없이 울었다.

아침에 배식구로 들어온 밥과 국을 몇숟가락 뜨다가 토해버렸다. 점심때부터는 밥이 들어오면 얼굴이 해쓱해져 외면해버렸다. 사흘을 굶었다.

권영벽은 빨찌산생활의 체험을 통하여 이러한 때 값싼 동정이나 살뜰한 위로의 말은 사람을 더 나약하게 만든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우야 멸시조로 거칠게 뇌까렸다.

《야, 너 계집이냐? 사내냐? 너같은 약골은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예?!》

첫 응대였다.

《밥은 왜 안 먹어? 난 오늘 죽을지 래일 죽을지 모르지만 꽝꽝 먹어. 죽을 때까진 살아야 한단 말이여. 먹어야 살 구멍도 열려!》

청년은 밥과 국에 송장내와 피냄새가 푹 배여 도저히 먹을수 없다고 하소했다.

《너같은 겁쟁이는 안돼!》

《나같은 죄를 짓고도 살수 있을가유?》

《야, 말해. 눈물만 짜지 말구… 집은 어디 있어?… 이름은…》

그의 이름은 고순일, 집은 평택에서 40리 떨어진 시골 봉수골에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앓는 어머니가 홀로 살고있었다.

고순일은 팔자를 고쳐보려고 서울에 올라와 실업학교 속성과를 다니다가 학비난으로 중퇴하고 화물역에 나가 상하차공으로 일하고있었다. 두달전 어느날 시골에서 먼 친척벌되는 어른이 서울에 올라왔다가 그한테 들려 누이가 인물덕에 정신대라는데 뽑혀 중국으로 가게 되였다고 알려주었다. 세상물정에 밝은 상하차공친구들은 왁작 떠들었다. 정신대란 이름은 그럴듯하나 실은 일본군의 륙군부대들에 소속된 성노예들의 마굴이다, 가면 일생을 망치고 죽는다, 절대 보내지 말라!

고순일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먹을 부르쥐고 평택으로 뛰여내려갔다. 그가 봉수골에 도착했을 때는 면에서 뽑힌 15명의 처녀들을 평택으로 나가는 풍차에 태우는중이였다. 순일은 다짜고짜로 풍차에 오르는 누이의 팔목을 잡아 끌어내렸다. 면서기는 경악하여 성이 독같이 나서 그를 밀쳐버리고 누이를 빼앗아내여 차에 오르라고 강박했다. 란투가 벌어졌다. 경찰이 달려왔다.

순일은 국사를 방해한 란동분자로 몰려 면주재소 류치장에 감금되였다.

한달후 류치장에서 풀려나와 집에 와보니 누이는 중국으로 끌려간지 오래고 어머니는 그사이 여러번 졸도하고 병이 악화되여 생사경계를 오락가락하고 면사무소에서는 빨간 딱지, 일본군대징집령장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식견이 있는 어른들은 면서기가 면의 치안유지를 위해 그를 빨리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구실로 주재소장이며 면장을 구슬려 자기 사촌동생앞으로 나온 빨간딱지를 그한테로 돌려놓은것 같다고 했다.

순일은 이튿날 밤 징집령장을 찢어버리고 린근의 외삼촌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는 평택에 나와 차표도 없이 몰래 북행렬차에 올라탔다. 결국 원산을 지나서 렬차안에서 경찰에 잡혔다. 그래서 함흥형무소에 끌려왔다.

《국사집행을 방해했다. … 전쟁기피… 이런 죄를 졌는데 살아날수 있을가유? 예? 서울있을 때 말을 들으니 의정부경찰구류장에 징병기피자들이 여러명 있었는데 그들은 전쟁기피는 전시법으로 처형하기때문에 일반범죄에 비해 몇갑절 중한 형벌을 내린다고 했어요. 선생님, 정말 그럴가유? 예?》

《…》

권영벽은 말문이 막혔다.

《집에 홀로 있는… 앓고있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그래유. 저희 오누이를 고생스럽게 키웠다가 졸지에 아들딸을 다 잃은 어머니… 아-》

고순일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푹 떨구고 끅끅 느껴울었다.

권영벽은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그는 고순일이와 그의 누이가 당한 재화를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략탈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느낄수 있었다. 어제는 자연부원을 빡빡 긁어갔다면 오늘은 도회지는 물론 산간오지에서까지 인적자원을 전쟁에로 모조리 끌어가는것이 아닌가. 순일이네 집이 당한 재난은 이 식민지와 2천만동포가 당하는 수난의 축도이기도 했다. 아, 이 청년을 구원해서 어머니곁으로 보내주었으면… 안타깝고 괴로운 마음에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그러나 두터운 콩크리트벽으로 둘러싸여 외계와 완전히 차단된 독감방에 갇혀있는 처지로서 어쩌는 수 없었다. 여러해동안 2천만동포를 구원한다는 큰뜻을 품고 사령관동지따라 싸워왔는데 오늘은 시골청년 한명도 구원할만한 능력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다. 터져오르는 가슴을 움켜잡고 몸부림치며 마루바닥우에서 몸을 뒤채기다가는 일어나앉아 단숨을 몰아쉬는가 하면 절망끝에 널마루우에 맥없이 누워버렸다.

새벽녘에 권영벽은 벌떡 일어나앉았다. 구석쪽으로 가서 벽을 마주하고 돌아앉아 인생의 서리가 허옇게 내린 자기 머리칼을 뽑기 시작했다. 고순일이 너무 놀라와 엉거주춤 일어나 그쪽을 지켜보다가 다가와서 권영벽의 팔목을 잡아 뒤로 끌었다. 권영벽은 말없이 애숭이를 뿌리쳐버리고는 다시 머리칼을 뽑았다.

고순일은 그가 아주 실성해버렸다고 여겨 망연자실한 사람처럼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와락 싸쥐며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였다.

 

×

 

권영벽은 배식구앞으로 가서 쪽문을 두드렸다. 간수가 달려왔다.

권영벽은 손에 쥔 반줌가량의 자기 백발을 보이며 일전에 왔던 안경쟁이재단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한시간반후 재단사가 왔다.

흥정이 시작되자 권영벽은 한주일동안 사식을 들여보내주면 판다고, 신용을 잘 지키면 앞으로 더 팔수도 있다고 했다.

안경쟁이는 백만원을 줘도 안된다고 소리치던 그 도고한 혁명가가 이렇게 선선히 나오자 영문을 몰라 어리벙벙해져 눈만 깜빡거리며 그를 지켜보았다.

《왜 싫소?》

《아… 아니… 아니, 선생님, 사식은 념려마십시오.》

약속대로 그날 저녁부터 사식이 들어왔다.

감방안 널마루를 깨끗이 닦고 재단사가 가져온 보자기를 펴고 식기들을 주런이 놓았다. 기름기 흐르는 하얀 쌀밥과 두부국, 생선튀기, 고추장, 깨간장, 김치…

권영벽은 청년과 나란히 앉아 그의 잔등을 쓸어만지며 어서 들라고 권하였다.

고순일은 놀라움과 감동, 어떻다고 짚어 말할수 없는 눈으로 그를 흘깃 돌아보고는 가슴속에서 터져오르는 격정을 누를 길 없어 얼굴을 그의 가슴에 와락 묻으며 소리없이 울었다.

사식은 다음, 다음날에도 계속 들어왔으며 고순일은 그 음식들을 정신없이 퍼먹었다. 그의 얼굴에 생기가 피여나기 시작했다.

권영벽은 매일 밤 청년에게 자기가 혁명에 나서게 된 경위며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어느날 깊은 밤중에는 그의 귀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속삭이였다. 내가 살길을 찾아준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라. 전쟁기피죄는 전시법에 따라 취급되기때문에 과중한 형벌을 받을수 있다. 어떻게나 가석방으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 그다음 집에서 경찰의 감시속에 병치료를 받는척 하다가 아주 도망쳐 일본법이 덜 미치는 고장으로 가야 한다. …

어느날 권영벽이 취침시간전에 간수의 눈을 피해가며 고순일의 다리와 목에 젖은 수건을 동여매여 하루밤 재웠더니 전신이 부어 눈도 뜨지 못하게 되였다. 간수를 불러 보이고는 계속 그렇게 하였다.

하루는 간수의 말을 들었는지 감옥의사가 황급히 달려와 고순일의 부은 얼굴이며 다리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또 각기병인가?》 하고 소리쳤다. 그를 병감으로 데려갔다. 그후 소식이 감감했는데 어느날 권영벽은 감방앞 복도에서 두 간수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고순일이 가석방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였다.

권영벽은 그가 경찰의 감시망을 빠져나가 멀리로 도망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것이였다.

고순일이 사라지자 권영벽은 또다시 무서운 고독감에 잠겼다.

독감방의 숨막히는 고독속에서도 고순일을 생각하면 푸른 창공을 훨훨 날으는 자유로운 새를 쳐다볼 때처럼 가슴이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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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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