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7

 

그날 밤 림수산은 연미숙이 차려준 주안상을 사이에 놓고 그 련락원과 마주앉아 오래동안 이야기하였다. 한명찬과 두 녀성은 병실로 올려보내고…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련전련승, 조선과 만주에서 치안유지를 위한 조선주둔군과 관동군의 움직임이 화제에 오르고 밀영과 림강지하조직의 련계를 더 긴밀히 하며 그 비밀을 엄수할데 대하여, 혁명군의 하복제작에 필요한 천과 물자들을 확보할데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서로 잔을 권하며 주고받는 말들은 취기가 오르면서 점점 무랍없이 되여 어느덧 혁명군주력과 그 사령부의 행처에 대한 화제로 넘어갔다.

《대장어른…》

《말을 좀 낮추시오.》

《작년 봄부터 여기 림강, 몽강, 장백현의 산악에서는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으니 이거- 어떻게 된 일이요? 무송, 화전쪽두 잠잠하구 화룡, 송강일대두 조용하다우. 이거 항일전이 다 어떻게 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 땐 정말 손맥이 풀리우다, 손맥이… 어- 손맥이…》

행상군은 술이 거나해져 목소리가 흐려졌다.

림수산은 술기운에 벌개진 눈으로 그를 건너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챠- 이거 걱정말라니까. 내 말만 믿소, 지금 이 일대가 조용한건 사실이지만…》

《그러니까 저 왜놈새끼들은 선전나발을 계속 불어대는데 공산군이 다 굶어죽구 맞아죽구 이젠 잔당이 얼마 안된다, 패잔병신세가 됐다, 항일전은 줴버리구 모두 먹구살기 위해 비적이 됐다, 사령관은 벌써 전사했다. … 이러는데 이거야 분통이 터져 살겠수?- 물론 개소리겠지만 정말 속이 타우다. 백성들은 기가… 기가 꺾여 이제는 원군물자두 잘 내지 않는다우. 젠- 장- 솔직히 말해주시오. 정말 혁명군이 있기는 있소? 예?》

《하- 이 량반이…》

《원호물자를 그만큼 받아먹구두 믿지 못하우? 좀 터놓구 말해주구려-》

림수산은 술을 쭉 들이키고는 잔을 소리나게 놓았다.

《양춘가절이 오면 이쪽으로 나올수도 있소. 대군이…》

《대군이?!》

《우리가 벌써부터 하복걱정을 하는걸 보면 모르겠소?》

《그렇지!》 행상군은 무릎을 내리쳤다.

《사령부가 이쪽으로 나오면 그때 가서 모르는척 하지 마시우. 우리 림강잠뱅이들두 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도록 주선해주겠소?》

《그건 내 혼자 결심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요.》

《아니, 이렇게 뒤걸음질칠내기우? 우리 원호물자를 그만큼 받아먹구두 이러기요? 섭섭하우다, 섭섭해-》

《그 문제는 그때 가서 봅시다.》

《우리 림강잠뱅이들은 형만 믿겠수다.》

《알겠소. … 긴급련락이란건 뭐요?》

행상군은 갑자기 얼굴빛이 달라지며 신중해진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이런데서 어떻게?…》

《괜찮소, 다 보냈소.》

행상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문쪽을 흘깃 돌아보고는 휘파람같은 소리로 귀띔했다.

《여기 밀영에 당신을 모해하려는자가 있소.》

《무슨 롱담을?…》

《우리는 근거를 쥐고있소.》

《누구요?》

《나를 혹독하게 다룬자요.》

《개인감정이 아니요?》

《여보!》

행상군은 모욕감에 주먹으로 상머리를 치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를 없애버리라. 혼자힘으로 자신이 없으면 우리가 돕겠다. 래일 오후 적당한 구실을 붙여 숯구이터로 내려보내라. 알겠는가?!》 하고 명령조로 씹어뱉었다.

림수산은 그 명령조의 말투며 그 위압적인 자세에 술기운이 말끔히 가시였다. 피가 곤두섰다.

《이게? 술대접을 했더니… 어디다 대구… 감히.》 하고 그는 불이 황황 이는듯 한 눈으로 상대를 쏘아보았다.

《감히?!… 여, 날 똑똑히 보랏-》

《뭐라구?-》

《날 똑똑히 봣-》

《당신은 누구요?》

《관동군사령부 특무부소속 모리다대위요.》

림수산은 자기가 어떻게 뛰여일어났으며 어떻게 싸창을 뽑아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모리다는 몇순간 석고처럼 창백하게 굳어진 상대의 얼굴을 쏴보다가 자기 가슴을 면바로 겨눈 싸창의 총구를 천천히 옆으로 밀어버리며 뇌까렸다.

《이래봐야 소용없어. 내가 들여보낸 신문을 봤겠지? 머지않아 일본외상이 모스크바로 날아가 쏘련외상하고 회담하게 돼… 이제는 믿을데도 의지할데도 없어, 없단 말이야.》

림수산의 얼굴은 순간에 사색이 되였다. 쇠메로 정수리를 내리친듯 눈앞에서 새파란 불꽃들이 튀여났다. 방안이 휙 돌아갔다. 그는 몸을 주체할 길 없어 기우뚱거리다가 벽을 짚고 고개를 떨구며 신음소리를 내였다.

《으으- 음-》

《투항하라! 대원들 전원을 데리고… 닷새전부터 우리 황군이 이 밀영을 원거리에서 포위하고있다.》

그리고는 천천히 돌아서나갔다.

림수산은 황황히 뒤쫓아갔다.

《그러니까 화라즈밀영을 〈토벌〉하게 한것두 당신이요?》

《당신이 버린 전령병을, 최성배를 잡아다가 배를 갈라보게 한것도 나요.》

《아, 악귀같은!…》

《흠, 락엽으로 대충 묻었지? 살아나서 기여가는걸… 그때부터 우리 특무부는 당신을 점찍어두었소. 경거망동하지 말고 심사숙고하시오. 우리는 당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투항하기를 바라오. … 양정우! 중공 군장 양정우처럼 되지 않겠으면…》

림수산은 부엌칸바닥으로 내려서는 놈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죽여야 한다. 죽이면 만사가…)

모리다가 반사적으로 홱 돌아봤다.

《철없이 놀지 말아. 이 주변엔 내 부하들이 매복해있어. 총소리만 나면 뛰여들어. 심사숙고하라!》

그날 밤 자정이 지나 눈보라가 터졌다. 례년에 없던 무시무시한 눈보라였다. 해일처럼 아우성치며 산발을 휩쓰는 눈바람의 횡포에 나무가지들이 우지직 꺾어져날리고 아름드리 거목들이 뿌리들을 찢으며 쓰러져 눈가루의 자욱한 안개속에 태를 치며 딩굴었다. 가깝고 먼곳에서 나무그루들이 얼어터지는 소리가 작탄이 터지는 굉음처럼 울렸다.

산발이 통채로 전률하는듯… 바람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차있는듯…

휘유- 휘유- 윙- 윙-

그것은 아우성소리, 비명, 절규의 웨침인듯… 어느덧 그 모든 소리들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림수산은 그 눈바람속을 뚫고 재봉대밀영쪽으로 달리고 또 달리였다. 달리다가 눈바람에 날려 눈속에 구겨박혔다. 딩굴었다. 그러다가 눈을 한웅큼 쥐여 입에 쓸어넣고 와작와작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아- 어째… 어째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가. 투항?… 변절?… 안돼, 안된다. 잰내비같은 너따위 대위놈 손아귀에 잡혀 놀아날 내가 아니다. 난… 난… 지휘간부야, 참모장이다! 내가 어떤 혁명경력을 가졌는데 너따위 놈한테… 안돼, 안된다. 어림도 없어.…)

그는 빨리 사령부에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자고 눈보라속으로 달리고 또 달리였다.

그러다가 뚝 멈춰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담벽같은것이 앞을 막아섰던것이다. 그것은 최성배, 화라즈밀영 《토벌》, 박주호, 목단령에서의 동요, 모리다대위… 여태 혁명앞에 저지른 죄악의 응어리로 쌓여진 벽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를 함성을 내지르며 주춤 물러섰다. 눈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그바람에 두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눈속에 엎어졌다. 이윽고 그는 얼어붙은 속눈섭을 주먹으로 문질러 떼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도량이 큰 사령관동지는 용서… 용서하실게다. )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재봉대밀영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리였다.

(재봉대와 신대원들 력량을 합쳐 저놈들 포위를 뚫자. 돌파하자! 하자!)

눈바람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아우성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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