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13

 

박대산이 양녕대군과 함께 대궐을 떠나 리천으로 돌아온지도 벌써 몇달이 지났다.

산과 들에 열매가 익고 만곡이 무르익는 가을이 왔다. 하늘은 푸르게 높아지고 말들이 살진다는 계절이여서 그런지 마구간의 새매도 기름기가 주르르 흘렀다.

대산이와 영아는 조단을 날라다가 마당가득 쌓아놓고 조이삭을 잘랐다. 지난해 양녕대군의 허락을 받아 집오래 새초밭을 낟알밭으로 일구어서 지은 조였다.

영아가 어찌나 이악스럽게 김을 매고 북을 주고 거름을 내며 알차게 가꾸었는지 조이삭이 참 탐스럽게 열렸다.

이것을 마당질해서 좁쌀을 내면 열서너말은 실히 날것 같았다.

지난봄에 박대산은 영아와 함께 얼마 되지 않는 밭이나마 지성껏 다루었다.

땅과 사람이 힘을 내면 지독한 왕가물도 이겨내고 사람이 먹고사는 량식을 얻어내리라는 믿음이 이렇듯 알심있게 농사를 짓게 하였다.

구수하고도 들크무레한 낟알향기를 안은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왔다.

중낮이 됨즉할 때 조이삭을 다 땄다. 두사람은 마음이 흐뭇하여 시누런 조이삭무지를 바라보았다.

《여보 성덕이 아버지, 서울 오빠한테 가고싶어요. 조랑 콩이랑 좀 가져다드리면서 형님두 만나보구 성덕이랑 보여주고싶소이다.》

《나도 그 생각이 들었네. 형님도 아주머니도 무척이나 좋아서 반갑게 맞아들이리라는것이 눈에 선해오네. 또 내가 겸사해서 가고싶은건 무과별시가 언제쯤 있겠는지 그걸 알아보자고 그러네.》

《네? 무과별시?! 호호… 성덕이 아버지가 별시를 보이면 장원을 넘치구 남을것이예요. 그다음엔 벼슬 한자리를 받구 여봐라, 저리까라 할게구요. 호호호.》

영아는 즐거운듯 명랑하게 웃었다.

《그만 웃게. 허참, 이건 지난번에 형님과 의논이 있은 일이네. 롱담이 아닐세. 나나 임자나 임금의 은총을 갚아야 할 사람들이거든. 내 그래서 군역을 다시 지고 변방을 지켜서려는것일세.》

남편이 웃지도 않고 이렇게 진중히 말하자 영아는 그제서야 이 일이 웃음으로 넘길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대군마님이 허락할가요? 당신같은 억센 대장부를 제 품에서 내놓으려 하겠는지 모르겠군요.》

《글쎄,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임금이 걱정하는 변방진영에 가겠다는데 막기야 하실가.》

영아는 그 말에 감심되여 한동안 말이 없다가 무엇을 결심한듯 남편의 손을 꼭 부르쥐였다.

《여보, 생각을 잘하셨소이다. 우리 상감마마의 은총을 갚자요. 저도 별시를 보이겠어요!》

《으응? 당신도?!》

《상감마마의 은총을 갚는건 남자나 녀자나 다같이 해야 할 도리예요. 저도 당신과 함께 무술을 익혔으니 한번 겨루어보겠나이다.》

《허― 장하군, 장해. 당신이 말타고 칼쓰기, 활쏘기를 잘하는것을 내 알지만 녀자라고 별시를 보이게 하겠는지 모르겠네.》

대산이는 껄껄 웃으면서도 눈굽을 닦았다. 안해의 충의가 불쑥 눈물을 자아냈던것이다.

《불허하면 그만두리다. 그러나 성덕이 아버지가 어느 먼 변방에 가시든 저는 성덕이를 업고 따라가겠나이다. 오랑캐와 싸우시는 당신을 돕겠어요. 그거야 별시를 보이지 않고도 할수 있는게 아니오이까.》

영아도 이같이 마음을 다지면서 눈물을 씻었다.

《내 성덕이 엄마의 마음을 잘 알겠네. 오늘은 조마당질을 끝내구 래일은 양녕대군마님께 서울 형님네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미를 받아야겠네. 형님과 아주머님이 당신이랑 성덕이랑 보면 기뻐서 어쩔줄을 모를거네. 또 임자가 별시를 보이겠다고 하면 깜짝들 놀랄테지. 하하하―》

박대산부부는 자기들의 운명에 어떤 불행이 닥쳐오고있는지 모르고 이같이 임금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에서 사람답게 살리라고 큰 포부를 안고 가슴을 설레이였다.

다음날 아침 박대산은 양녕대군을 찾아갔다. 목책을 빙 둘러친 대군의 집 마당가에 보지 않던 말들이 매여있고 대군의 곁에는 낯선 관리 하나가 앉아있었다. 또 그옆으로 대여섯보 떨어진 곳에 꼬물만큼이라도 인정사정이 없어보이는 《메밀눈》이 허리에 찬 칼을 그러쥐고있었다.

《네가 벌써 무슨 소식을 알고 온게 아니냐? 그러지 않아도 너를 부르려 했더니.》

박대산은 황송히 양녕대군앞에 하정배를 하고 머뭇거리였다. 낯선 관리들이 있어서 찾아온 용건을 말하기가 어려웠던것이다.

양녕은 측은한 눈길로 박대산을 바라보며 《으음, 일이 안됐고나. 어이하면 좋을고… 장영실이… 아, 이런 말을 어이할고… 그 사람은 죄를 당하구 대궐을 떠나게 되였느니라. … 방금 여기 의금부관리들이 그 소식을 가지고왔구나.》 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박대산은 와뜰 놀라 양녕대군을 마주보았다. 이건 무슨 청천벽력인가. 그는 돌처럼 그자리에 굳어졌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았다.

《죄라니, 무슨 죄를 당했나이까? 그 형님이…》

박대산은 눈앞이 캄캄하여 말문이 막혔다.

《네가 장영실의 매부되는 박대산이냐? 때마침 잘 왔다. 너에게 장영실의 죄를 알리고 련좌법을 통고하려던 참이다.》

의금부관리는 섬돌아래 박대산을 험하게 굽어보면서 거침없이 매정하게 말을 이었다.

《박대산은 듣거라. 장영실은 임금의 련을 몇번 행차에 깨지도록 만들어서 임금을 크게 놀래웠으니 불경죄, 역적란신죄를 제스스로 저질렀다. 참형을 받아야 하나 상감께서 그 형벌을 세등급 낮추어 목숨을 보존케 하였다. 그러되 장영실을 파직시키고 본래 동래현 관노로 쫓아보낸다. 너의 처 장영아도 제 오빠와 련좌되여 본래의 관비로 되돌려보내고 너의 아들 박성덕이도 관노비로 되였으니 그리 알아라. 너 박대산이도 련좌되여야 할것이지만 지난날 양녕대군의 호환을 막아주고 생명을 구원했으며 지금도 대군마님의 반당소임을 충실히 하는고로 너는 아직 가만두고 보기로 하였다. 알겠느냐.》

대산은 혼신을 다 빼앗긴듯 비칠거렸다. 허망한 꿈이라도 이렇듯 불길한 꿈이 어디에 있으랴.

아니다. 그의 천성이 죄지을 사람이 아니다. 상감마마의 성은에 뼈골을 다 바치겠다고 눈물을 흘리던 형님이 아닌가. 장영실형님이 노비로 다시 돌아가다니 웬말이냐. 영아도 관비로 되고 어린 성덕이도 관노라니 악몽속에서도 있을지말지한 일이다. 상감께서 세월과 더불어 장영실형님을 높이 치하해오지 않았던가. 상감마마가 있는데 이런 일이 어찌 있을수 있겠는가.

《여쭙기 황송하오나 소인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소오이다.》

박대산은 저도모르게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너의 대답이 방자스럽다. 네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어쩔소냐? 네 대군마님을 모시고있기로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너를 가만둘것 같으냐? 잔말말고 처와 아들애를 동래현 노비대장에 올리도록 해라.》

박대산은 엎어지듯 양녕대군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군마마, … 어인 일이오이까. 정녕코 믿어지지 않나이다. 이게 정말이오이까.》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무슨 까닭으로 의금부관리들이 예까지 왔겠느냐. 오늘 당일로 너의 처와 아들을 동래로 압송해가라는것을 하루이틀 말미를 받아서 네가 데려가도록 하였니라. 그리 알고 돌아가서 떠날 준비를 해라. 할수 없다. 사는 사이고 공은 공이다. 이 일은 인정사정으로 어느 개인이 용서해주고 용서받을수 없다. 처와 아들을 네가 데려다주게 한것도 너를 크게 생각해준것이니 어서 그리 해라.》

양녕대군은 처음과는 달리 랭정히 잘라말하였다.

《하오나 처와 아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관비, 관노로 얽매였나이까. 더구나 아들애는 장영실형님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이런 어린애에게 련루죄를 지운다는게 과연 옳은 처사이리까. 대군마마― 아…》

박대산의 울부짖음은 마치 피를 쏟듯 하였다. 이 절통한 웨침은 지금껏 믿고 모셔온 양녕대군밖에 받아주고 풀어줄데가 없어 터뜨리는 하소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침내 양녕대군의 노기를 일으켰다.

《무엇이라고? 내가 알아들을만큼 타일렀거늘 이렇듯 무엄하게 시비를 따질테냐? 너만이라도 장영실의 죄에 련좌되지 않은것도 다행스런 일로 알구 언행을 삼가할것인즉 오히려 이 무슨 야료냐―》

박대산의 눈에 언제나 보기 좋던 양녕대군의 수염이 사납게 부르르 떨었다.

《네가 함부로 국법을 시비하고 어명을 얕잡아보며 잘된 처사라느니, 못된 처사라느니 이러쿵저러쿵 불복하면 그 불복죄로 의금부에 압송할테다. 알았느냐? 본래 노비에서 노비로 돌아가는데 무엇이 그리 절통해서 앙앙불락하느냐.》

박대산은 마치 까마득한 벼랑에서 떨어져내리는중에 벼랑중턱의 나무가지를 잡았다가 그것마저 부러지는것 같은 절망을 느끼였다.

양녕대군이 이런 사람이였던가. 우리를 이런 눈으로 보았던가.

문득 뇌리에 번개쳤다. 처음에 양녕대군의 령지에 들어와 범을 잡아놓고 주연을 벌릴 때 《호조판서》가 대군마님의 기분을 조금만 거슬리면 용서치 않는다던 그 말이, 술 못하는 노비에게 술 한동이를 강제로 먹여 죽게 만들었었다던 그 말이 뇌리에 번개쳤다. 등문고를 치고 임금의 하회를 기다리는 경상도백성들을 못된 놈들이라고 하던 양녕대군의 말이…

나는 왜 그때 그 말들을 스쳐지나보냈던가? 이 박대산에게 집을 주고 새초밭도 맡겨주고 자기가 타는 백마까지도 내주면서 부모의 산소에 다녀오라고 극진히 믿어주고 사냥할 때나 대궐로 행차할 때나 다른 시중군들을 다 물리치고 나 하나를 데리고다니던 그 고맙고 황송함에 눈이 멀어 대군의 본심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양녕대군이 이 사람을 극진히 위해준것은 진심으로 자기를 받들어주고 임금의 형님으로 존경하고 복종하고 순종하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섬겨갈 이 사람의 진정을 쓸모있게 본데 있었구나. 집주인에게 충직한 사냥개를 사랑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를 사랑했구나. 그것은 충직한 사냥개를 잘 먹여주며 고와하다가도 조금만 기분을 거슬리면 없애버리는 그런 사랑이였구나. …

양녕대군앞을 물러나온 박대산은 발길이 어디에 닿는지도 몰랐다. 늘 다니던 길을 어디서 헛갈렸는지 알수 없었다.

이 기막힌 사연을 안해에게 어떻게 알려주랴. 내 안해가 노예이고 내 아들이 노예라면 내가 바로 노예의 남편이고 노예의 아버지다. 노예는 죽기보다 못하다. 죽을 각오이면 두려울것이 무엇이랴. 이 세상, 이놈의 량반세상을 그대로 두고 어느 하루인들 백성들이 기를 펴고 살수 있겠는가.

그의 머리에 불현듯 벙글벙글 웃는 억쇠가 떠올랐다.

전 의금부도사 리창배를 친경장에서 죽여버리고 《내가 김을지다―》 라고 소리치며 달아난 사람, 나를 위해 제 생명을 돌보지 않고 의리를 다하는 사람들이 웅거지에 있었다.

상기도 그들은 악덕량반관리들, 우로는 임금을 속이고 아래로는 생사여탈(살리고 죽이는것을 제 마음대로 하는것)을 행하는 간악한자들을 치고있다.

오늘밤이라도 영아와 어린 성덕이를 데리고 그들의 웅거지로 가고싶었다. 수년전에 웅거지를 떠나올 때 최두령이 후회할 때가 반드시 있으리라고 했었지. 이놈의 세상에서는 어디 가나 사람답게 살수 없다던 그 말이 과연 옳았구나!

어느 사이 집에 왔는지 그는 몰랐다. 마당에서 영차, 영차 신바람나게 조절구질을 하던 영아가 남편이 오자 밝게 웃으며 일손을 멈추었다. 그 웃음엔 양녕대군이 승낙했으리라는 믿음이 곱게 어려있었다.

《가셨던 일이 잘되였어요?》

물론 서울에 갈 말미를 허락받았는가를 묻는것이였다.

《서울에 갈 리유가 없게 되였네. 성덕이 외삼촌이 불일간 이곳에 들렸다가 동래현에 내려갈것 같네.》

《아이, 그럼 더 잘되였네요!》

영아는 또 기쁘게 방긋이 웃었다. 오라버님이 그전처럼 무슨 공무로 오가는줄 여기는 모양이다. 보고싶던 오라버님을 어서 만났으면, 여기 양녕대군의 령지에서 헤여진 이후로 여직껏 만나보지 못한 오빠, 오빠가 그리운 영아이다.

《아버지!―》

어데선가 놀고있던 성덕이 방글방글 웃으며 제 아버지품에 뛰여들었다. 대산이는 얼결에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 이애가 오늘부터 관노란 말인가. )

그는 불시에 숨이 꺽― 막히였다. 할 말이 없었다. 말은 나오지 않고 굵은 눈물만이 나왔다.

영아는 남편이 이상스러웠다. 오라버님이 일간 여기로 오신다는데 저이는 왜 저러실가.

《엄마, 아버지 울어. …》

성덕이는 대산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씻어주며 저도 얼굴을 씰룩이였다.

《여보,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영아는 아이를 아버지품에서 떼내여 제 품에 안았다.

해는 벌써 중낮이 되였다. 새매인지 보라매인지 새초밭우에 높이 떠서 빙빙 원을 그리며 날아돈다. 덮쳐먹을 어린 새를 찾는가부다. 문득 매가 무엇을 보았는지 숲속으로 내려꽂힌다.

그러나 그 숲속에서 자그마한 새 두마리가 매를 맞받아오르며 아우성치듯 우짖는다.

작은 새들이 이리날고 저리날며 사나운 매에게 달려든다. 매는 어쩔수없이 이리저리 쫓기다가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그래, 장하군. 사나운 놈들은 저렇게 쫓아내야지. 저 작은 새들처럼 힘을 합해서 악질관리놈들을 쫓아내야 한다. )

대산이는 말없이 큰숨을 한번 내긋고 안해의 손을 꼭 잡았다.

《여보 성덕이 엄마, 마음을 굳게 다잡고 내 말을 들우. 서울 형님이 파직되였수. 상감마마의 련을 지성껏 만들어올렸는데 그 련이 파손되여 상감마마께서 굴러떨어졌다고 하우. … 형님이 불경죄를 당하고 다시 노비로 되였소. 그래서 동래현으로 간다오.》

영아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리였다. 대산이는 안해가 까무라치지 않도록 그의 어깨우에 억센 손을 올려놓았다.

《상심말게, 우린 아무래도 〈산당〉의 웅거지로 들어가야 하겠네. 서울 형님의 죄가 우리에게 련좌될것 같네. 그러면 우리도 노예로 될것 아닌가. … 그렇게는 살수 없으니깐… 조절구질을 다그쳐서 량식이랑 마련하구 입을 옷이랑 그릇가지랑 싸놓게. … 대군마님의 집에 의금부관리가 와있네. 그놈들이 우리를 압송해갈것 같네. 하루이틀 말미를 받았으니 동래현으로 가는척 하구 웅거지로 가세.》

대산이는 안해와 성덕이가 벌써 노비신분으로 떨어졌다고 차마 이야기할수 없어 이같이 에둘러 마음의 준비를 시키였다.

영아는 의외로 오돌차게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는 돌연 차돌처럼 굳세졌다.

오빠가 이미 노예로 되고 이제 또 아들과 온 가족이 노예의 멍에를 써야 할 시각이 앞에 있었다. 울고있을 짬이 없었다.

그때문인지 아니면 산악처럼 미더운 남편이 옆에 있기때문인지 혹은 자기도 말을 타고 달리며 무술을 익혀온 든든한 자신심이 있어서인지 영아는 이 큰 불행을 끄떡없이 견디였다.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녀인이 아니라면 벌써 쓰러졌을것이다.

영아는 남편과 함께 양지현 시부모의 묘지에서 라졸놈들과 칼싸움도 치르어보았었다.

그는 아녀자의 몸으로도 무과별시를 보이고 나라를 위해 먼 변방으로 나가 남편과 함께 오랑캐들을 짓쳐버리고싶었던 소망마저 이룰길 없는 이 세상이 저주스러웠다. 밖으로 외적을 치자던 그 칼과 창이 안으로 못된 량반관리를 치게 될줄은 몰랐다.

《알았어요. 웅거지로 들어가자요.》

《오늘밤에라도 떠났으면 좋으련만 서울형님이 여기에 들릴것 같으니 떠나더라도 형님을 보고 떠나야지.》

《네, 오라버님을 만나 자상한 얘기를 들어보면 속이라도 시원할것 같아요.》

박대산은 안해가 대견스러웠다. 혹 울고불고 락심천만하여 기력을 잃고 드러누우면 어쩌랴 했었는데 뜻밖에도 새롭게 심신을 가다듬지 않는가.

《당신의 행동이 밝고 뚜렷하니 걱정이 없는데 서울아주머님이 근심스럽네. 형님을 잃고 객사노비로 쫓겨갈테니…》

《불쌍하오이다. 그 마음어진 형님이…》

영아는 숙이의 정상이 가엾어 눈물을 흘리였다.

《여보, 난 이번 형님사건을 상감마마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소. 지금도 생각나지만 상감마마께서 행차를 멈춰세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네. 〈너는 일후에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등문고를 치거나 글을 써서 과인에게 알려라. 〉라고 하셨지. 또 우리 글을 만드시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백성들이 글을 알아야 고을아전들과 관리들의 악행을 글로 적어 고소도 하고 송사도 할수 있노라. 지금은 우리 글이 없어서 간악한 량반들이 남의 나라 글로 백성들을 속여먹고 등쳐먹어도 알수 없노라. 〉라고 하셨다지 않나.》

대산이는 이렇게 말하고 어린 성덕이를 꼭 그러안았다. 마치 어린애에게 닥쳐온 풍파를 막아주듯이…

《상감마마께선 온 나라의 부모이신데 더 말해 무엇하겠어요.》

《그러게 말이요. 나도 임자도 글을 배운 뜻이 무엇이겠소. 상감마마와 가까운 백성이 되자는것이지. … 우리도 글을 올리면 어떨가?》

대산이는 아이를 내려놓으며 큰 눈을 빛내였다.

《네?! 우리가요?》

영아는 일손을 멈추고 남편을 마주보았다.

《하기는 그전에 글을 안다면 상소라도 하라고 하셨다니… 아이, 그럼…》

《옳네, 옳아! 상감마마께선 임자 오빠는 물론이고 임자까지 속량해주시였고 또 전번 친경때엔 우리에게 상을 내리시지 않았나. 이번에 글을 올리면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주실것 같네.》

《네, 올리자요! 글을 올리자요. … 아이참…》

영아는 한순간 앞이 탁― 트이는것 같아서 아이처럼 천진스럽게 웃었다.

《우리의 불행이 가셔진다면 웅거지로 들어갈 리유가 없지. 형님이랑 무사하구.》

그들은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안고 조절구질을 걸싸게 다그쳐댔다. 저녁에 일을 끝내고 눈짐작해보니 조가 열말은 능준할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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