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11

 

초저녁에 또글또글한 별들을 안고있던 하늘이 어느 사이 흐리고 자정이 이슥해지자 비가 내리였다. 한밤중에 번개가 일고 우뢰가 《꽈르릉, 꽈르릉》 지동쳤지만 장영실은 깊은 잠에 들어서 알지 못하였다. 그동안 밀렸던 잠이 그를 여지없이 곯아떨어지게 하였던것이다.

날이 훤히 밝아온 새벽에야 그는 난데없는 비소리에 놀라 깨여났다. 곁에 누웠던 숙이는 벌써 밥을 짓는지 부엌에서 그릇을 다루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어데선가 촐랑촐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좁쌀알같은 물방울이 튕겨나서 산듯산듯 얼굴을 적시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베개머리맡에 자그마한 오지단지가 놓여있고 거기에 비물이 떨어져내리고있었다. 올려다보니 흙바른 천정 한곳이 거밋하게 젖어있고 거기서 쉴새없이 물방울이 구슬처럼 맺혔다가 떨어졌다.

지붕이 새는구나. 비물을 받느라고 숙이는 밤새도록 자지 못하였구나. 언제인가 비가 새는것을 알고도 손댈 짬을 못내서 그냥두었더니― 하고 숙이에게 죄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비물단지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하더니 번쩍 눈을 빛내이며 무릎을 철썩 내리쳤다.

장영실은 오지단지를 꼼짝 않고 들여다보았다. 마치 거기에 무슨 귀한 보물이 들어있는것처럼 그의 얼굴에서는 금시 기쁨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점차 노을처럼 붉게 피여났다.

그는 성큼 일어나 문을 열어젖혔다. 밖에서는 비가 억수로 내렸다. 하건만 그는 속옷바람에 신발도 신지 않고 문밖으로 뛰여나가 어제저녁에 세면물을 버리고 놓아두었던 소랭이를 지숙히 들여다보았다. 소랭이에 비물이 벌써 츠렁츠렁 고여올랐는데 세차게 내리는 비방울들이 동글동글 무수히도 무늬를 그려놓았다. 장영실의 속옷은 삽시에 젖어들어서 살에 찰싹 달라붙었다.

부엌에서 밖을 내다보던 숙이는 남편의 이상한 행동에 깜짝 놀랐다.

(저이가 웬일이실가? 까닭없이 빈 소랭이는 왜 들여다보실가?)

그는 제잡담 밖으로 달려나가 장영실의 손을 잡아당기였다.

《나리님, 감기드셔요.》

그러면서도 눈길은 소랭이에 갔다. 혹시 거기에 무엇이 들어있나해서였다. 허지만 거기엔 비물뿐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참…》

숙이는 저도모르게 맹랑히 웃으며 장영실의 얼굴에 줄기져내리는 비물을 훔쳐주었다.

《여보세요, 어서 들어가소이다.》

늦가을의 차디찬 비바람이 숙이의 말을 흩날려버리며 두사람의 몸을 후려쳤다.

《임자, 여보 숙이, 저걸 좀 보게. 소랭이에 물이 차오르는것을 보라니깐. 하하하… 이렇게 단순한걸 어렵게 생각했으니… 아, 그참…》

장영실은 마치 모진 더위와 갈증에 시달렸던 사람이 마침내 단비를 만난것처럼 두팔을 활짝 펴고 얼굴은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아이들처럼 너무 좋아서 웃었다.

숙이는 겁이 더럭 났다. 그는 남편의 몸을 흔들며 《여보, 여보, 이러시면 안되오이다. 어서 들어가셔요.》 하고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허나 남편은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방안에도 비물이 고였네. 임자가 오지단지로 비물을 받아두었더군. 수고하였네. 그걸 보고 내 밖으로 나왔네.》

숙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온몸이 졸지에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남편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구나. … 이를 어쩌노… 그렇지 않다면야 비바람이 사나운데 맨몸으로 나와서 집안의 오지단지에도 비물이 차오른다고 웃고웃으랴. 무엇이 단순하단 말인가. 무엇을 어렵게 생각했단 말인가. 단지귀신에 홀렸는가, 비귀신에 잘못되였는가, 어찌 이런 어리석은 말을 하랴. 무엇인가 만들어내려고 한가지 일에 심독히 정신을 쏟으면 정신이 다 빠져서 미친다더니 그렇게 된것은 아닌가. 아, 이런 때엔 어쩌면 좋담.

그는 남편이 불쌍해지고 가엾어졌다. 갑자기 놀래놓으면 혹 정신이 본래대로 돌아서지 않을가. 어떻게 하면 펄쩍 놀라게 할가. 어제밤처럼 천지가 깨지는것같은 벼락소리가 울리였으면 좋으련만… 어쩌면 좋담.

그의 눈에서는 비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수 없는 뜨거운것이 소나기처럼 흘러내리였다.

숙이는 부엌으로 달려들어가서 부지깽이를 들고나왔다. 실성한 남편의 종아리를 쳐서 깜짝 놀래놓을 차비였다. 그러나 장영실은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돌아섰다. 그는 부엌에서 나오는 숙이에게 빙그레 웃었다.

《당신도 옷이 다 젖었네그려. 어서 들어가 마른 옷을 갈아입자구. 그다음엔 내가 왜 이렇게 비를 탓하지 않고 좋아하였는지 말해줄게. 응? 여보.》

숙이는 부지깽이를 슬그머니 치마뒤로 감추며 그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천연스러운 남편을 잠시 눈여겨보았다.

《여보, 비를 맞지 말구 어서… 헌데 왜 나를 처음 보듯 하오? 그 부지깽이는 또 뭐구? 왜 그러우?》

숙이는 남편이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전히 밝고 다정하게 빛나는것을 보고 그가 실성하지 않았다는것을 그때에야 알았다. 불시에 눈물이 솟구쳤다. 기울거리던 세상이 바로 선듯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의 손에서 부지깽이가 스르르 떨어져내렸다.

《나리님, 용서하시오이다. 저는 나리님의 정신이 잘못된줄 알고… 부지깽이로 번쩍 정신이 들게… 나리님의 종아리를… 여보, 이 못난 년을 용서하소이다.》

숙이는 장영실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하하… 하마트면 정갱이가 부러질번 하였군.》

만약 이들의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억수로 퍼붓는 비발속에서 해괴하고 망측스럽게 놀아난다고 뒤시비질을 할것이였다. 그러나 비오는 새벽이라 나다니는 행인이 없었다.

방안에 놓여있는 비받이단지에는 물이 꼴깍 차오르고있었다. 그들은 마른 옷들을 갈아입고 단지앞에 나란히 앉았다.

《이 단지물은 비가 밤새도록 어느만큼 왔는가를 보여주는걸세. 그러나 이것을 보고는 정확하게 비량을 잴수 없네. 밖에 있는 소랭이물과 방안에 있는 이 단지의 물량이 다르지 않나. 웬 까닭인고 하면…》

장영실은 언제나 무엇이건 가르쳐줄 때처럼 알기 쉽게 차근차근 이야기하여주었다.

숙이는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가 보석처럼 머리에 쑥쑥 들어와박혀서 방등불처럼 켜지고 밝아지는것만 같았다. 산천에 동이 터오는것처럼 머리가 환히 트이고 우량기의 용도며 그 리용가치며 그것을 각 도, 각고을에 설치할 앞날이 내다보였다. 그것으로 백성들의 농사를 돕고 산을 다스리고 강을 다스릴 앞날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 아둔한 소비가 그것도 모르고 나리님을… 호호… 그러니 우리 집에 비가 새서 단지를 놓은것이 참 잘되였나이다. 안그렇소이까, 응?》

《정말 잘하였네. 숙이가 아니였다면 상기도 생각해내지 못하였을거야. 당신이 큰 복비를 받아낸걸세.》

《아이참 복비?! 정말 그렇군요!》

《하하… 가난한 내 집에 천금만금 주고도 아니 바꿀 보화가 내 집지붕으로 새여내렸네. 얼씨구절씨구 이 아니 경사이냐.》

장영실은 어느 사이 흥에 겨워 온몸을 들썽들썽 하더니 어깨춤을 추면서 일어나 숙이와 비물단지주위를 빙빙 돌아갔다.

《여보, 여보― 부창부수란 말 못들었소. 남편이 부르면 안해가 기다린듯 대답하고 달려나온다고 했으니 나의 안해인들 어이 가만히 앉아있으리오. 여보!―》

장영실은 춤가락동작으로 숙이를 손짓하며 어서 일어나라고 정다운 웃음을 던졌다. 본래 활달한 숙이라 몸을 차츰차츰 솟구어올리며 남편의 부름을 고운 목소리로 받아외웠다.

《여보, 여보, 부창부수란 말 못들었소. 남편이 부르면 안해가 기다린듯 대답하고 달려나온다 하였으니 안해인들 어이 가만히 앉아있으리오. 예, 여기 나가오이다.》

숙이는 보름달같은 얼굴에 꽃같은 웃음을 담고 장영실의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었다.

 

          닐리리 닐리리야 가난한 상호군네

          비새는 단간방에 살아왔더니

          고래등 기와집이 부럽지 않네

          그 누가 우리처럼 복비를 받아내랴

 

장영실의 웅글고도 구성진 목청에 숙이의 맑고도 구슬같은 노래가락이 엇섞여들어서 저절로 흥취가 칭칭 휘늘어지는 춤가락을 불러내였다. 서로의 눈길이 부딪치고 웃음과 기쁨이 부딪치는 두사람의 몸과 마음은 뗄래야 뗄수 없는 하나가 되여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닐리리 닐리리야 가난한 상호군네

          비새는 단간방에 단지를 놓았더니

          온 나라에 내리는 비 다 담아내누나

          이것이 우량기니 꿈같지 않으랴

 

밖에서는 비가 그칠줄 모르고 방안에서는 춤노래가 그칠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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