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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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경분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한인 김새의 공로를 임금에게 알리는 글을 올리였다.

그 글에는 의약과 해충을 없애는데 다같이 유효하게 쓰이는 경분을 많이 만들어낼수 있도록 나라에서 해당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라는 제의도 들어있었다.

세종은 매우 만족하여 신하들에게 지시하였다.

《장영실은 경분을 시험해보니 벌레들이 죽었다고 하였다. 장영실이 경분의 가치를 인정하였다면 과인도 인정한다. 경분을 많이 만들어내도록 나라에 경분소를 내오고 각 도에도 내오도록 해야 할것이다. 모두 장영실의 제의대로 할것이다. 한인 김새에게는 집을 지어주고 안해를 얻어주어 그가 우리 나라에서 살도록 잘 도와줄것이다.》

장영실은 임금의 믿음에 더 큰 힘을 얻고 경분을 만드는 일을 다그쳐나갈 의지를 가다듬었다.

그와 함께 비오는 량을 재는 기물을 반드시 만들어낼 마음을 새롭게 굳히였다.

김새는 김새대로 조선의 임금이 자기를 높이 일러주는데 감격하여 그 성은에 보답할 준비를 하였다.

처음에는 장영실을 도와 우량기를 만드는데 힘써볼가 하여 근 보름가까이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였다. 하지만 갈수록 험산이라고 그것이 더욱 난감하게 생각되여 손을 떼고말았다.

그러나 장영실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이 일은 백성들이 바라고 임금이 바라는 일이였다. 그는 날마다 주자소와 군기감의 야장간, 더우기는 새로 나온 경분소를 채바퀴돌듯 돌아다니면서 한꺼번에 세가지 일을 도맡아안고 주관하였다.

그에게는 시간이 늘 모자랐다. 낮이면 낮대로 뛰여다니고 밤이면 밤대로 등잔불을 돋구어가면서 우량기를 연구하였다.

그는 자기 집에서 치료받고있는 최서방을 어느 사이 까맣게 잊었다. 무엇인가 한가지 일에 파묻히면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리는것이 그의 허물이면 허물이고 장끼라면 장끼였다.

이렇게 근 스무날이 흘러갔다.

장영실의 몸은 볼품없이 축갔다. 본래 체소한 사람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여 눈은 벌겋게 충혈지고 몸은 한줌만 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명랑하고 쾌활하였고 샘솟는 열정은 지칠줄 몰랐다.

하루일을 끝마친 어느날 저녁이였다. 인왕산하늘가에 빨갛게 타던 저녁노을이 스러지고 일에 지친 장공인들의 몸에 피로가 몰려들듯이 경분소에 황혼이 찾아들었다.

《나리님, 오늘은 하루밤만이라도 집에 들어가 주무셔야 하리다.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다가 쓰러지면 누가 나리님을 대신하오리까. 나리님은 천금처럼 아까운분입지요. 쓰러지면 안될분이웨다.》

이렇게 늙수그레한 장공인 하나가 걱정해주자 장영실은 껄껄 즐겁게 웃었다.

《원참, 별소릴 다하우. 내 몸만 아깝구 여러분네는 아깝지 않단말이요? 사람은 다 천금처럼 귀하고 쓰러지면 안되오이다.》

《그건 그렇지오만 나리님하고야 우리들하고는 봉황과 닭과 같이 대비가 안됩지요. 우리모두의 궁냥을 합쳐두 나리님궁냥을 따르지 못하오이다.》

《옳소이다. 하루밤 푹 쉬고나면 정신이 맑아지오이다. 그때에 비오는 량을 잰다는… 그게 뭐라든가… 그것이 번쩍 떠오를지 모르오이다.》

어느 젊은 쟁인바치가 상투꼭지가 드러난 머리를 끄덕이며 제 말을 눌러다지듯 하였다.

장영실은 장공인들에게 우량기를 만들어야 할 까닭을 알기 쉽게 말해주고 그것을 만들어낼 방도를 누구나 생각해보자고 이미전에 말해두었었다.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고 여럿이 의논하면 무엇인들 만들어내지 못하랴 하고 그들을 고무해주었다.

《나리님, 저 사람의 말이 그럼즉 하오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새벽처럼 정신이 맑아지고 생각나지 않던것이 떠오르기마련입지요. 흐린 물속은 안보여도 맑은 물속은 꼬리치는 고기가 보이듯이 말이웨다.》

장영실은 장공인들의 인정이 고마왔다. 인정이란 이렇게 량반들이 천하게 여기는 쟁인바치들과 백성들속에서 나온다.

최서방만 보아도 남이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지 않았는가.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 생각이 최서방에게로 돌아가자 그는 자기가 지금껏 그를 잊고있었다는것을 불시에 깨달았다.

앓고있는 사람을 숙이에게 맡겨두고 집을 나선이래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던것이다.

(아참, 이런 정신봤나. 내가 그를 잊다니… 남의 인정은 고마와하면서도 나에겐 인정이 없었구나. )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장공인들이 어서 하루밤만이라도 쉬고나오라는 그 인정에 못이겨 집으로 가면서도 최서방에게 죄스러워 걸음발을 빨리 하였다.

그는 날이 어슬어슬할 때 정든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아이, 나리님―》

토방가에 나앉아 남편을 기다리던 숙이가 나직이 부르짖으며 달려나왔다.

그는 남편이 오늘은 집에 드시려나 래일은 오시려나 하고 늘 기다려온것이다. 숙이의 이런 애틋한 심정을 잘 알고있는 장영실은 숙이에게 더 정이 갔다.

《안됐네. 그동안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임자도 잊었댔구, 최서방네들도 잊어먹었네그려. 하하하… 그래 최서방은 좀 어떻소?》

《최오석아주버님은 떠났어요. 아직 쾌차하지 못하는데 그만에야…》

숙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였다. 그나마도 말끝을 여물리지 못하고 근심이 가득 실린 한숨을 내그었다.

《그만에야라니? 응? 무슨 일이 있었소?》

숙이는 다급히 묻는 남편의 마음을 눅잦혀주기라도 하듯이 남편의 손을 살풋이 감싸쥐였다. 그리고는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것처럼 소곤거리였다.

《그런 일이 있었소이다. 어서 방에 들어가시오이다.》

장영실은 스쳐지날수 없는 일이 생긴것 같아서 말없이 숙이를 따라 들어갔다.

방등대에서 오이씨같은 피마주등잔불이 가물거리였다.

최서방과 경상도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방안은 휑뎅그레한게 쓸쓸해 보였다.

장영실은 옷갓도 벗지 않고 그자리에 앉았다.

《어서 말 좀 하게. 무슨 일이 있었나?》

《먼저 밥을 잡숫고 이야기를 들어도 늦지 않으리다.》

《밥이 다 뭔가. 최오석형님이 앓는 몸으로 떠났는데… 어서 말하게.》

장영실은 부엌으로 내려가는 숙이의 손을 잡아 눌러앉히였다.

숙이는 할수없이 며칠전에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최서방은 그동안 몸이 많이 나아져서 지팽이를 짚고 마당을 천천히 거닐수 있게 되였다.

숙이는 최서방이 하루하루 눈에 띄우게 조금씩 나아지는것이 기뻤다. 남편이 와서 최서방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랴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다.

숙이는 남편을 언제나 나리님으로 공경하는데 습관되였다.

량반관리들이 제잘났다고 무쌍히 놀아나지만 나의 나리님처럼 뛰여난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그야말로 나리님중의 나리님이시다. 숙이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어서 기다리는 마음이 언제나 간절하였지만 그런 나날에 나리님이 무엇인가 더 훌륭한것을 만들어내리라는 생각에 저절로 방긋이 웃음이 피여났다.

나리님이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명절처럼 즐겁고 행복하였다.

나리님이 관노출신이라고, 또 관청노비와 혼례를 치르고 함께 산다고 누가 숫보지 않도록 깨끗한 옷차림으로 내세우려고 사랑을 다 기울이였다.

삯빨래, 삯바느질, 삯절구질…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하였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여 한푼두푼 모아서 장영실의 옷감을 마련하고 그가 좋아하는 찬거리를 사오군 하였다.

일할수록 힘이 솟고 즐거웠다. 장영실은 쟁인바치들과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땀흘려 일하느라고 새옷도 덞어놓고 빨아서 다려준 옷도 장난꾸러기아이들처럼 그날로 새까맣게 어지럽혀놓기도 하고 꿰뚫어놓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숙이는 호호 웃으며 《어디 누가 이기나 내기하소이다. 나리님은 더 많은것을 만들어낼 내기, 소비는 나리님의 옷을 더 많이 빨고 다려줄 내기―》 하고 어글어글한 눈빛으로 일손을 잡았다.

그는 장영실을 위한 일이라면 피곤을 몰랐고 고생도 락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고된 일에 부대껴도 달덩이처럼 더더욱 환하게 피여났다.

그 모습은 남편에게 바치는 사랑이였다.

숙이가 한푼두푼 모은 돈은 돈이 아니라 그 또한 남편에게 드리는 사랑이였다.

장영실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사랑이 고스란히 남아서 소중히 간직되여 기다렸다.

요즈음은 그 사랑이 최서방의 병치료에 아낌없이 흘러들었다.

오늘도 숙이는 부엌문밖에 땅가마를 걸어놓고 무엇인가 정성껏 끓이고있었다.

자그마한 오지단지에서는 흰김이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소리없이 몰몰 새여나왔다.

최서방의 몸보신에 쓰려는 닭곰이였다. 닭곰은 불길이 너무 세도 안되고 너무 낮아도 안되고 알맞춤하게 해야 잘 고아진다.

그래서 숙이는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마른 나무가지를 하나씩 집어넣고있었다.

그의 보름달같은 얼굴에 구슬같은 고운 땀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하, 이거 또 닭곰을… 자꾸만 이러시면 송구해 어이 하리오.》

잠들었던 최서방이 깨여나 문밖을 내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고 닭곰냄새가 좋아선지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마당가를 유유히 날아다녔다.

《아이참, 송구할것도 많으시네. 아주버님, 밖에 나와 한번 걸어보소이다. 이제 몇번이나 닭곰을 해얄지 좀 가늠해봐야 하겠소이다. 호호…》

숙이는 밝게 웃으며 롱말을 하였다.

《허허… 그러면 내사 닭곰을 더 많이 먹게 우정 아파서 못걷는체 해야겠구만.》

《네, 어서 그래봐요. 호호…》

최서방도 벙글거리며 엄장 큰 몸을 움쭉 일으켜세우고 문지방을 넘어섰다.

그가 입은 무명바지저고리는 숙이가 새로 지어 입힌것이다. 처음에 빨아입혔던 옷은 너무나 해지고 찢어지고 기운 곳이 많아서 새로 옷을 짓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최서방은 고마운 자기의 심정을 어떤 말로도 나타낼길 없었다.

그는 문가에 세워놓았던 지팽이를 짚고 토방을 내려섰다. 하고는 지팽이를 보란듯이 내버리고 자신있게 허리를 쭉 폈다.

《자, 한번 보소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 눈물은 수고많은 숙이에게 보내는 감사의 눈물이였다.

《아니, 아니, 지팽이는 잡으셔요. 그러다가 넘어지면… 지금껏 쌓아둔 공든 탑이 무너지겠소이다. 자, 어서 지팽이를 잡으셔요.》

숙이는 얼른 지팽이를 집어주었다.

《여보게, 최서방― 지팽이를 짚게…》

《허, 저런, 인젠 지팽이도 없이 걷겠다니 룡이 되였소그려.》

《암, 그렇다마다. 하, 그참…》

때마침 경상도사람들이 마당굽에 들어서며 이렇게들 한마디씩 건네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들의 손에는 제가끔 가물치꿰미며 쌀되박이며 과일 같은것들이 들려있었다.

오늘도 삯일을 해주고 최서방을 위해 사오는것이다.

《임자네들이 내탓에 고생들 하네. 집에서는 굶주린 식구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릴터인데…》

최서방이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서서 그들의 가족식구들을 걱정하였다.

《집에서는 늘 그 모양인데 따로 걱정할것 없네. 자, 한번 걸어보게. 그래야 집으로 빨리 갈게 아닌가.》

나이지숙한 베잠뱅이가 최서방곁으로 다가섰다. 넘어지면 붙들어줄 차비인것 같다.

《그래, 그래야 하구말구. 자, 지팽이 없이 걷겠네.》

최서방은 또다시 지팽이를 버리고 한걸음, 두걸음 어린애 첫 발자국을 떼듯이 걸었다.

《하, 잘한다. … 하나, 둘… 그래, 그렇지. 또 하나 하구 둘 하구, 그 참 용소이다. … 하하…》

《허허허.》

《호호호…》

최서방이 제발로 걷는것을 보고 다들 기뻐서 즐겁게 웃었다.

바로 이때였다. 까맣게 윤기도는 통영갓에 전복을 입고 볼따귀에 군살이 늘어진 관리 하나와 꼭대기에 뻘건 술이 달린 벙거지를 제껴쓰고 륙모방망이를 든 라졸 두엇이 사립문을 발길로 걷어차며 들어섰다.

《이놈들 보아라. 세상이 다 제것처럼 마음대로 웃고 떠들어대는고나. 네놈들이 도대체 어떤 놈팽이들인데 이렇듯 방자스럽냐? 바른대로 아뢰여라.》

통영갓쟁이관리가 당장 잡아먹을듯이 입귀를 씰룩거렸다. 난데없는 불호령에 걸음발을 익히던 최서방은 우뚝 멈춰서서 뒤돌아보았다.

숙이도 얼결에 흠칫 몸을 떨고 경상도사람들도 놀란듯 굳어졌다.

라장인듯한 놈이 숙이의 어글어글한 눈과 달덩이같은 얼굴을 탐스럽게 훔쳐보다가 틀스럽게 한마디 던지였다.

《여기에 나오신 나리님은 군기감의 판관 리사균님이시다. 너희들이 얼마전에 등문고를 친 죄로 형장을 맞은 놈과 그 패거리렷다. 다 알고 왔으니 나리님께 이실직고해라.》

최서방은 땅을 딛고선 발이 저려나는지 비칠거리였다. 숙이가 재빨리 지팽이를 최서방에게 주고 부축하였다.

《흥, 그년 생겨먹은것도 그래, 놀아나는 꼴도 그래 안팎으로 행실이 불량하다. 량반벼슬관앞에서 감히 사내의 팔을 끼다니… 너 이년, 괘씸한 년, 네가 장영실의 노비로서 안해노릇도 겸한다지. 응? 흐흐흐…》

리사균의 함지박같은 배가 흥떡흥떡 우아래로 오르내렸다. 라장, 라졸들도 히히닥거렸다.

숙이는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그는 리사균이란 군기감의 판관을 보기는 처음 보아도 이놈이 어떤 놈인가를 남편의 말을 들어서 알고있었다.

남편이 새 화포를 만들어내는것도 시기하여 억지감투를 씌워보려고 하다가 종내 그 야심을 어쩌지 못했다더니 상기도 남편을 해치려고 앙심을 품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숙이는 자기를 무참히 비양하고 모욕하는것도 다 남편을 헐뜯고 모멸하려는것임을 느껴안았다. 나에게야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그러나 남편을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려고 하는것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그는 《장영실나리님은 상호군으로서 정3품 당상관이요, 판관은 당하관에도 미치지 못하는바인데 당상관을 뉘집 아이들이름처럼 하찮게 부르고 그 부인을 감히 이년, 저년 쌍말로 모욕하는것은 바로 하관이 상전을 짓밟는짓이니 그 죄가 역적죄와 다름이 있으리오.》 하고 호되게 맞서고싶었지만 혀를 깨물고 참았다.

분을 누르자니 눈물이 나왔다.

최서방은 착하고 마음씨고운 숙이가 자기때문에 쌍욕을 당하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리사균앞에 한발 나섰다. 그가 짚고선 지팽이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이 집 마님에게는 죄가 없소. 다 죽게 된 사람을 살려낸 마님을 의로운 부녀의 소행이라 장히 례우해줄 대신에 어찌 량반치고 무지스런 언행을 함부로 할수 있으리오. 내가 바로 대궐에 들어가 매를 맞고 나온 사람이요. 해볼것 같으면 나에게 해보오.》

《음, 그래 네놈이 등문고를 함부로 친탓에 형장맛을 톡톡히 치른 놈이 틀림이 없으렷다. 으흐흐…》

리사균은 무슨 큰 끈터구나 잡은듯이 쾌재를 올렸다.

그놈은 자기가 바라는대로 일이 착착 맞물려돌아간다는듯이 다시 너털웃음을 치고나서 엉큼하게 물었다.

《그래 이 집이 뉘집이냐?》

《상호군 장영실나리님댁인줄도 모르고 왔소?》

최서방의 목소리에는 반발심이 내돋았다.

그는 굵은 지팽이를 어떤 무기와도 같이 꽉 그러안았다. 체통이 우람한데다가 부어오른 얼굴로 상대를 맞갖지 않게 지그시 바라보는 그 모양은 받는 황소와 같이 금시 달려들것만 같았다.

리사균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미욱스런 저눔이 지팽이를 휘둘러대면 당장에 팔다리든 무엇이든 부러져나갈것만 같았다.

그러나 량반이 상놈앞에서 체면을 잃을수 없어 리사균은 최서방의 태도는 꼬물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는듯 오히려 코방귀를 내불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다더냐. 장영실의 집이라고 너의 입으로 말하는것을 듣자는것이다. 그래, 이 장영실의 집에 와서 누구와 또 모의를 벌렸느냐?》

《모의라니… 그건 또 웬 소리우. 생사람을 잡아먹지 못해 오금이 쏘우? 형장바람에 다 죽었던 사람이 누구와 모의를 한단 말이요? 상호군나리님은 주자소에 나가시구 지금껏 댁에 오지 않으셨소. 대체 누구와 모의를 하리오. 까마귀 꿩잡아먹고싶어도 못잡아먹소. 흥, 나를 잡아보자구. 상호군나리님을 어째보자구?》

최서방은 겁날것이 없었다. 한번 형장아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두번다시 형장을 못맞으랴 하는 배심이 솟구쳤다. 또 형장을 맞을 죄를 지은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떳떳하게 제 할소리를 다 하였다.

《이눔 봐라, 아직도 형장맛을 덜 받았고나. 상기도 기가 살았으니 너희놈들이 작당해서 이 집에 쓸어들었고나.》

《작당이란 또 무슨 소리요. 이 사람들은 나를 들것에 담아가다가 귀인을 만나 여기로 오게 된 사람들이요.》

《어랍쇼, 귀인? 흥, 귀인이라, 귀인이란게 누구냐?》

《죽어가는 사람을 제집에 데려다가 마님으로 하여금 지성껏 돌봐주어 살려낸 장영실 상호군나리님이지 뉘가 귀인이리오.》

리사균은 최서방이 당당히 맞서자 분이 상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썩은 돌에서 불이 인다고 괜히 허술히 보았다가 큰코 다칠것 같아 은근히 발이 저렸다.

《옳지, 이것 봐라. 노비출신이 무슨 나리님이구 귀인이냐. 너희들이 귀인이요, 마님이요 하는것들이 무사할것 같으냐. 언제까지 귀인이요, 마님이요, 나리님이요 하겠는지 두고보자. 임금의 어명으로 형장을 치고 내친 놈을 집에 데려다가 숨겨두고 싸고도는것이 너희놈들과 한패당이 아니냐. 너희놈들이 한동아리가 되여 등문고를 친것처럼 앞으로 또 패거리를 뭇고 무슨 일을 벌릴지 누가 안다더냐. 이놈들, 두고보자.》

리사균은 이렇게 장영실의 죄가 될만한 크고 엄중한 단서나 잡아쥔듯이 살기등등하여 돌아갔다. …

숙이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간 숨을 돌리듯이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다음말을 이었다.

《최서방은 그 이튿날 동래로 떠나갔소이다. 자기들때문에 나리님께 루가 미칠것 같다고 아직 먼길을 갈수 없는 몸으로 떠났어요. 나리님께 잘 말해달라고 꾸벅꾸벅 절을 하구… 어떻게 가내겠는지 걱정되여요. …》

장영실은 숙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그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쥐였다.

《임자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겠네. 그러나 너무 걱정을 말게. 최서방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곁에 경상도사람들이 있지 않나. 로자를 좀 보태주었더라면 좋았으련만…》

《네에, 제가 좀 보태드렸어요. 삯일을 해서 모아두었던…》

《그래?! 그거 썩 잘했네.》

장영실은 숙이를 대견히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나리님에게는 어떤 혐의가 미치지 않을가요? 판관이 엄청나게 거짓죄를 사실인것처럼 꾸며내고 갔으니 걱정되여요.》

《그까짓, 아무 걱정말게. 리사균이 내가 없는 짬에 얼토당토않는 소리로 이 사람을 어째보려고 하지만 난 청백하네. 하하하… 물이나 떠주게. 손발이랑 씻고 오래간만에 우리 부부 겸상해서 밥을 먹어보세. 한쌍 원앙새도 암컷수컷이 겸상해서 밥을 먹는다지? 응? 그렇다지?》

《호호호, 나리님도 참…》

《하하하, 우리도 그렇게 하세!》

《네, 그렇게 하소이다. 호호호…》

잠시후에 장영실은 숙이가 떠온 물소랭이에 손을 잠근채 그대로 앉아있었다.

임금의 어명으로 최오석네들을 잡아들여 형장을 쳤다고 한 리사균의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정말 임금이 그런 어지를 내렸을가? 아니면 그가 지어낸 말일가?

얼마전에 리천으로 떠나가는 양녕대군을 바래워줄 때에도 이 한가지 의문을 버리지 못하였었는데 오늘 또 미심쩍었다.

거기에 잇달아 안국방 할머니의 가련한 정상이 떠오르고 백성들의 보금자리를 깔고앉은 왕자들의 고루거각이 보여왔다.

장영실은 그 모든 의심과 불안을 씻어버리듯 찬물을 활활 얼굴에 연방 끼얹으며 세면을 하였다.

머리가 시원히 맑아지고 세종이 백성들에게 불행을 들씌울 임금이 아니라는 믿음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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