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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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산이 영추문을 향해 몇걸음을 떼나마나 할 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봐라, 너희들은 륜음을 받을지라―》 라고 웨치는 소리가 쨋쨋이 들려왔다.

바로 북각앞에 액정서(임금의 명령전달, 궁궐문을 여닫는 일을 맡은 관청)의 관리와 수문장(문을 지키는 장수)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우뚝우뚝 서있었다.

륜음(임금의 지시)이라니 양녕대군도 마상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부복해있던 백성들이 술렁거리며 머리를 더 깊이 수그리고 저희들끼리 가만가만 입을 놀렸다.

《여보게, 륜음이래.》

《이제야 기다린 보람이 있군.》

《공법을 고치려면 벌써 그랬어야지, 무릎가죽이 벗겨지도록 해놓구선… 원―》

《쉬― 이 사람 참형을 당하구싶나?》

대산이는 자기 발치앞에 궁둥이를 뻗치고 엎드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못들은척 하고 앞을 내다보았다.

백성들의 땀배인 등허리에 엷은 저녁노을이 비껴흐르고 만장우에 무덤속같은 적막이 깃들었다.

어떤 륜음이 내리겠는지 대산의 마음도 조여들었다. 경상도라면 자신이 십년동안 군역을 살던 곳이였다.

동래현에서 영아와 처음으로 사귀였던 잊지 못할 곳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그는 경상도 백성들이 남같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이 불원천리 찾아와 하소하는것이 얼음녹듯 풀리기를 바랐다.

마침내 액정서 관리가 《어험―》 하고 큰 기침소리를 한번 내고서 병아리무리속을 걷는 게사니걸음으로 장히 거드름스럽게 몇발자국가까이 백성들앞에 나섰다.

《여봐라, 너희들은 들을지라. 너희들은 어찌하여 언감생심 대궐밖에 무리지어 앉아서 방자스럽게 이 무슨 야료를 부리는가. 공법으로 말하면 피땀흘려 농사짓는 백성들의 수고를 가긍히 여겨 상감마마께옵서 친히 재상들과 의논끝에 공포한 전세법이 아니냐. 온 나라 8도 330여 고을중에 어찌 경상도만이 말썽인고. 이전에 실시한 손실답험법(한해수확이 떨어진 정도를 현지에 나가 논밭을 돌아보면서 판정하여 전세액을 감해주는 법)이 농사짓는 백성들을 괴롭힌다 하여 그것을 페하고 공법을 세우지 않았느냐.

논밭의 기름지고 메마른 정도에 따라 거기에 알맞는 고정된 전세액을 정한것은 백성을 살리는 법이노라.

너희들이 한해농사를 잘 지으면 그만큼 배부르고 농사를 게을리하면 그만큼 배고픈데 어찌 농사에 힘쓰지 않고 천여명이나 작당해서 무엄하게 덤비는고. 토지 1결당 실지 수확고가 400말이요, 그에 해당한 전세액은 도무지 20말밖에 안되는것조차 곱게 받아들이지 않고 언감(어찌 감히) 자행자지(제 마음대로 행동하는것)를 식은죽 먹듯 하느냐.

너희들이 오늘 아침 진시에 정당한 리유도 없이 함부로 등문고를 쳤기로 오시에 북을 울린자들을 잡아들이고 본보기를 보여주었지만 재차 등문고를 쳐서 대궐을 소란케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면서 임금께 불복하느냐. 엄벌을 받을지라.

북을 친자는 스스로 일어나 오라를 져라―》

부복해있던 백성들이 일시에 머리를 쳐들고 술렁이였다. 갓쓴 사람, 탕건을 쓴 사람, 베수건을 동여맨 사람 모두 너도나도 한마디씩 내뱉았다.

《잘두 한다. 오금이 아주 꺾어지도록 엎드려 바란것이 오라줄인가.》

《륜음인지 제 소리인지 알수 있나.》

《여게 최서방, 고향으로 내려가세. 일이 틀렸네.》

《그러기 말이야. 숱한 사람들이 등문고를 치면 수가 날줄 알았더니 죽을수가 났네. 흥…》

《내려가면 뭘하노. 집에 가도 굶어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매한가지 아닌가베…》

이때 전갈하인의 쨋쨋하고 째진 고함소리가 채찍같이 귀청을 때리였다.

《북을 친자는 순순히 일어나 오라를 받으랍신다―아―》

갑자기 주위가 감감 기척이 없었다. 누가 일어나 달갑게 오라를 지고 끌려가서 형장아래 피를 뿌리겠는가.

죽기를 겁내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랴.

허나 맨 앞줄에 앉았던 선비 하나가 일어나지는 않고 엎드린 그대로 전갈하인의 고함소리에 맞받아 웨치였다.

《북은 내가 쳤소이다. 오라를 받는것은 급하지 않사와 할 말은 하겠사오이다. 우리가 북을 치지 않을수 없은것은 저 북각기둥에 써붙인 글처럼 북을 울려 정사를 바로잡기 위함이요, 공법이 부당함을 지재지삼 천언만언으로 알리여 그것을 고쳐주십사 하는 마음이 쌓이고 쌓였기때문이오이다. 공법은 손실답험법과 마찬가지로 피페가 많아 백성들은 만곡을 거두어들이는 가을에도 낟알을 다 빼앗기고 굶어죽소이다.》

선비의 목소리는 어느덧 떨리고 원한에 사무쳤다.

《언거언래(서로 말이 오가는것)는 불가하다. 할 말이 있거든 잡혀가 하랍신다―아―》

선비의 말을 칼날처럼 잘라버리는 전갈하인의 고함소리가 또다시 날아들었다.

그러나 선비는 용기를 가다듬고 제 말을 이어나갔다.

《공법에 토지 1결당 수확이 400말, 그 세액을 20말로 정한것은 상전(좋은 밭)을 기준한것이므로 상전을 독차지한 량반부자들에게는 리롭지만 땅이라고 할수 없는 돌밭하전(나쁜 밭)을 가지고있는 가난한 선비들과 백성들은 1결당 수확이 100말도 거두어들이지 못하는데 어이 상전과 한가지로 20말을 전세로 물리오. 그나마 한재와 수재로 10말도 안되는 해에도 전세액은 전세액대로 20말을 물어야 하옵니다. 또 세줄이 동아줄같은 량반사대부들과 호부자들의 땅은 상전이라도 중등전(중간급의 밭)이나 하전으로 등급을 낮추어 매기고 의지할곳 없는 백성들의 땅은 하전이라도 중등전 혹은 상전으로 매겨서 전세를 받아가옵니다.

또 각종 부역으로 논밭을 묵이지 않으면 안되는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