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마가을바람은 윙- 윙- 위혁적으로 울부짖으며 불어오고 락엽들이 을씨년스럽게 흩날렸다.

주력부대의 행군종대는 산중턱의 수풀속을 꿰질러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있었다. 아마 아득한 하늘에서 굽어보면 외줄의 그 행군종대는 후미진 골안이며 산중턱이며 릉선들에 우불구불 휘감긴 바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8련대의 행군종대와 함께 걷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쳐버린 기관총수의 경기를 어깨에 메고 대원들을 고무하며 걸싸게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주력부대를 이끌고 령활한 유격전으로 올기강과 장산령기슭의 도처에서 적들을 쓸어눕히다가 구룡봉일대에서 적군의 포위속에 들게 되시였다. 적들은 주력부대들을 완전히 소멸하려고 중중첩첩으로 둘러친 포위환을 좁히면서 발광적으로 달려들었다.

구룡산의 릉선들과 산비탈, 골짜기들에서는 나흘동안 혈전이 벌어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비상한 유인전술로 적의 포위환을 교란시켜놓고 주력부대를 이끌고 그곳을 빠져나와 곧바로 화라즈로 향하시였다.

화라즈의 후방밀영에는 그이의 예견성있는 조치에 따라 오백룡의 식량공작대가 동기작전을 위한 식량을 마련해놓았을것이기때문이다.

한달전 항일련군의 1군장 양정우는 위증민을 통하여 그이께 친서를 보내여왔었다.

양정우군장은 지난해 겨울 남패자에서의 첫 상봉을 감회깊이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 그리운 김사령, 나의 생명의 은인이시여, 나는 탁월한 혁명가이며 군사전략가인 김사령을 알게 되고 친분관계가 깊어진것을 무상의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 김사령도 알고계시겠지만 중원대륙에서 벌어지고있는 중일전쟁에서 일제는 팔로군과 신사군, 중앙군의 강력한 군사공세로 곤경에 빠졌습니다. 놈들은 관동군을 중일전선에 시급히 증강해야 할 형편이나 중조인민들의 항일무장력때문에 그런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습니다. 관동군은 우리를 완전소멸하려고 다가오는 겨울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것입니다. 올겨울은 우리 두 군에 있어서 운명적인 계절로 될것입니다.

나는 1군의 전체 력량으로 관전, 액목, 휘남의 3각지대에서 과감한 유격전으로 관동군을 타격하여 귀군에 집중되는 적을 소멸약화시킴으로써 동지의 은혜에도 보은하겠음을 맹약합니다.

관동군의 동기공세를 철저히 분쇄하기 위하여 두 군이 서로 정세와 적정을 통보하며 긴밀하게 협동하기를 희망합니다. … 경례!》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친서에 감동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주력부대를 이끌고 식량이 장만된 밀영으로 빨리 가셔야 했다. 거기서 쉬면서 기진해지고 굶주릴대로 굶주린 대원들을 우선 배불리 먹이고 기력을 회복시키며 대렬을 정비보강하는 한편 작전준비를 다그치셔야 했다. 작전은 장산령산줄기와 영액령산줄기를 비롯한 백두산동부의 험악한 산악지대로 관동군을 끌어들여 변화무쌍한 유격전으로 소멸하는것으로 될것이였다.

가을바람속을 헤치며 행군종대는 묵묵히 전진했다. 중중첩첩으로 둘러친 왜군의 포위환들을 혈전으로 뚫고 수십리 불바다를 헤쳐온 대오였다. 지휘관이나 대원, 그 누구의 얼굴이나 초연과 불길에 거멓게 그슬렸고 백병전의 열광이며 무섭게 분출되던 적개심이 가셔지지 못해 아직도 피진 눈들이 사납게 번뜩이고 땀발이 흐르는 볼이며 단숨을 내뿜는 입술, 총가목을 움켜잡은 주먹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떨림이 느껴진다.

추처럼 무겁지만 억척스럽게 움직여지는 발들… 군화발, 지하족발, 도로기발… 불길에 타고 비발치는 총탄과 날아드는 총검에 찢기고 군도날의 휘파람소리와 함께 갈라져 펄럭이는 군복자락들, 그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피멍이 든 살갗… 걸으면서도 마른 열매나 나무속껍질, 풀뿌리들을 정신없이 씹는 대원들…

굶주린 대오는 전진했다.

기진하여 운신조차 할수 없는 사람들의 대오, 하나로 묶어세운 의지가 아니였다면 이미 쓰러진지도 오랬을 대오가 가고있었다.

윙- 윙- 울부짖는 마가을바람, 흩날리는 락엽들… 대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견인력에 끌려 발걸음이 빨라지지도 떠지지도 않고 침착하게 움직여갔다.

그들은 앞에서 가는 대원들의 발걸음에서 일매진 률조를 느끼며 숨결도 걸음도 그것에 맞추어 발을 쉬임없이 내짚고 또 내짚었다. 어느 누가 일깨워준것도 아닌데 모두가 그 률조를 어기고 앞으로, 앞으로 끌어당기는 견인력에서 벗어나 주저앉거나 맥을 놓고 아주 쓰러지면 그것은 곧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며 죽음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여 벌써 여러날 맹물과 풀뿌리즙으로 창자를 적시며 걷고있으나 쓰러지는 대원 하나 없었다. 행군속도도 크게 떠지지 않았다.

대원들은 누구나 며칠을 굶었으며 얼마나 걸어왔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들을 살려낸 그 돌파작전의 전모와 구체적인 지략들은 거의 모르고있었다. 그저 사령관동지의 전반적인 작전구상에 따라 련대장이나 중대장, 소대장들이 쏘라고 하면 쏘고 내뛰라고 하면 이미 가리켜준 방향으로 맹수처럼 돌진하여 적을 무찔렀을뿐 다른 부대들은 자기 방향들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몰랐다. 하지만 사령관동지의 《신출귀몰》의 지략과 비범한 작전지휘로 하여 이렇듯 푸른 하늘을 보며 맑고 신선한 공기속으로 행군할수 있게 되였다는것은 똑똑히 알고있었다.

지금도 대원들은 사령관동지께서 저 앞장에서 험준한 길을 헤쳐가며 이 행군을 지휘하고계시기에 대오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살아나며 끝내는 승리자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고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 간고한 행군의 원동력이였다.

화라즈분지의 숲속에 숨어있는 밀영까지는 아직도 이틀걸음은 잘될것 같았다.

화라즈… 쌀이 있는 화라즈밀영… 생각만 하여도 어둠과 안개속에서 항로를 밝히는 등대불처럼 희망을 안겨주는 화라즈밀영…거기에는 오백룡이 있고 림수산참모장까지 새로 갔으니 군량이 장만되여있을것이다. 지금쯤 그들은 아마 식량을 쌓아놓고 우리를 기다릴것이다. 이제 거기에 도착만 하면 모두 한바탕 배를 두드리며 먹을수 있도록 련대마다 큰 가마에 쌀밥을 짓게 하고…그 다음은 며칠 푹 쉬게 하고… 20대의 청년장군의 가슴에 이런 공상이 흰구름처럼 피여오르는데 별안간 눈앞이 획 돌아가고 다리맥이 스르르 풀리였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이 행군을 시작할 때 앞으로 겪게 될 기아와 과로의 고통을 예상하여 행군도중 음식과 휴식과 같은 공연한 소리를 하여 대원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지휘관들에게 이르시였던 그이이시였다.

그것들이 상기되면 순간에 마음의 탕개가 풀려 허기를 백배나 더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자신께서 경계하시던것을 자신께서 범하시는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름드리나무를 한손으로 짚고 의지력으로 몸을 가누며 빙긋이 웃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도 대원들과 꼭같이 풀뿌리를 씹고 대원들과 똑같이 험한 길을 걸었으며 대원들이 허기를 느끼면 같이 느끼였고 대원들이 힘들어 비지땀을 흘리면 같이 비지땀을 흘리시였다.

이 빨찌산전쟁에서 사령관만 걷는 평탄한 길이 따로 없었고 사령관만 드는 푸짐한 식사가 따로 없었다. 그이께서는 전쟁에서만 사령관이시고 생활에서는 보통대원이나 다름없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아름드리나무를 짚고 하늘을 쳐다보시는데 숲속을 누비며 달려온 척후대의 전령병이 숨이 턱에 닿아 보고하였다. 이제 행군종대가 넘어야 하는 산등성이 저쪽골안에 적정이 나타났다고…

사령관동지께서 산등성이로 뛰여올라가시였다.

발밑에 굽어보이는 골바닥의 우불구불한 도로에서 황토색 흙먼지구름이 엇비스듬히 피여오르는데 길 량옆으로 늘어선 누런 보병종대가 황급히 움직이고 그 복판으로 풍막을 씌운 화물자동차행렬이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리며 달려가고있었다. 붕- 붕- … 윙- 윙- 기승을 부리는 차들의 동음, 착잡한 군화발소리…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보병서렬속에서 날아오르는 욕지거리소리 … 웃쪽으로부터 행군서렬의 흐름을 거슬러 군마를 타고 달려내려오던 장교가 치중마차옆에서 말고삐를 뒤로 힘껏 잡아챘다. 앞발을 번쩍 들어올리며 맴도는 군마의 바스라지는 투레질소리… 장교는 마차쪽에 대고 무엇이라고 소리치고 치중병인듯한 구레나룻이 시꺼먼 땅딸보가 물통을 들고 달려와 그것을 놈에게 올리밀었다.

장교는 말안장에 앉은채로 물통을 거꾸로 들고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는 그것을 도로 던져주며 무엇이라고 유쾌하게 물었다.

땅딸보는 말뚝쥐처럼 꼿꼿이 서서 기운차게 대답했다. 몇마디 말이 오갔다.

언제 곁에 와 엎드렸는지 오중흡이 그이께 조용조용 말씀드렸다.

《장교놈이 고향이 어딘가, 전선이 첨인가, 무섭지 않은가 물으니 저 졸병놈이 글쎄 무섭지 않다고, 할힌골전선에도 가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교놈은 외몽고사막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

(할힌골에 갔다면 관동군이 아닌가. 아, 저놈들이 벌써…)

사령관동지께서 쌍안경을 내리며 오중흡을 돌아보시였다.

《관동군이요!… 〈토벌대〉가 아니요… 우메즈사령관놈이…》

그때 길바닥을 온통 들부시는듯한 쇠바퀴소리와 함께 군마들에게 끌려 산포들이 굴러왔다. 그뒤로 박격포 포신이며 포판을 기르마에 실은 말들이 뚜꺽거리며 따라왔다.

《저걸 보오. 산포에 박격포요.》

《〈토벌대〉엔 척탄통밖에 없는데…》 오중흡은 얼굴빛이 긴장해졌다.

《우메즈사령관놈이 7년이나 끌어온 우리하구 전쟁을 단시일에 결속짓자는 속심인것 같은데 야심만만하면서도 성급한 놈이니까…》

한시간후 왜군이 지나가며 풍긴 살기며 계곡을 진감한 쇠바퀴소리들의 여운인듯 골안에 연한 흙먼지구름이 떠돌 때 주력부대는 질풍처럼 도로를 건너 맞은편 산비탈로 치달아올랐다.

거뭇거뭇한 현무암투성이의 릉선에 오른 그이께서 뒤를 돌아보시니 아직도 8련대의 뒤꼬리가 도로를 건너오고있었다.

앞쪽의 숲속에서 나온 오중흡이 쓰러진 진대나무를 훌쩍 날아넘어 사령관동지한테로 달려왔다.

타는듯한 눈으로 그이의 얼굴만 지켜보며 다가왔다.

《사령관동지, 이미 지정한 방향으로 그냥 행군을 계속 하랍니까?》

《그렇소. 그냥 앞으로 나가오!》

《알았습니다!》

오중흡은 더 묻지 않고 홱 돌아서 기운차게 달려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허옇게 퇴색한 련대장의 군복잔등이 나무들의 줄기사이로 언뜻거리며 사라지는것을 지켜보시였다.

오중흡이 찾아왔다가 돌아선것은 순간의 일이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 그의 혁명가적품성과 인간됨됨이 드러난듯싶어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오중흡련대장은 전구에 새롭게 투입되는 관동군무력을 보고 충격을 받아 혹시 사령부의 결심에 무슨 변동이 없겠는가 하여 그자신 행동방향을 돌려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쳐 뛰여온것이 분명했다.

그의 예감은 맞으면서도 맞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관동군무력을 보았을 때 계속 증강되는 일제의 대무력을 수세에 몰아넣고 격멸소탕하자면 혁명군의 전략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당장 행군방향을 돌릴 생각은 없으시였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였다.

지칠대로 지치고 굶주릴대로 굶주린 대오의 이 강행군은 순 정신력에 의하여, 사령부를 철석같이 신뢰하는 대오의 견인불발의 의지력과 전대미문의 락관주의에 의하여 계속되는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선 식량이 저장되여있는 화라즈로 가서 대원들의 체력부터 추세워야 한다고 결심하시였던것이다.

오중흡은 정한 방향대로 계속 행군하자는가고 물음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약간한 의혹이 들자 곧장 사령부로 뛰여왔던것이다. 지난날 그한테서 이런 일은 여러번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솔직성과 흐린 구석이 없는 투명한 성품때문에 그를 믿고 사랑하게 되시였다.

오중흡은 소왕청근거지시절부터 그이의 손탁에서 평대원으로부터 련대장으로까지 자라난 지휘관이였다. …

해질녘에 그이께서는 8련대 정치위원 박덕산이와 나란히 걸으며 강행군의 어려움과 대원들의 사상정신상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연미숙이라는 녀대원이 앓는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더하지 않소?》

《더하지는 않는데 도무지 걷지 못해 어제부터 담가에 눕혀가지고 옵니다. 이번에 보니 아주 연약한 동무입니다.》

《녀성이 아니요, 녀성이…》

《다른 녀동무들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오한이 몹시 나니까 온돌타령을 하는데 빨찌산이 온돌방을 지고 다닐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 동무가 무얼 좀 들기는 하오?》

《통 먹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정숙동무가 찹쌀미음을 쒀가지고 와서 구완하니 다 먹었습니다.》

《찹쌀미음?》 저으기 놀라시는 음성이시였다.

《배낭밑에 한줌 남아있었답니다. 정숙동무 배낭은 무슨 보물주머니인지 그런 희한한게 계속 나옵니다.》

그때 연미숙이 실린 담가는 8련대 행군종대의 뒤꼬리에서 따라오고있었다.

그 녀대원은 보천보전투후 지양개에서 입대했었다. 그는 장백현에서 명의로 소문난 량심적인 의사의 딸이였는데 고녀를 중퇴하고 조국광복회조직의 영향으로 산간오지를 전전하며 계몽사업에 투신하였었다. 보천보와 간삼봉전투의 소식이 세상을 뒤흔들고있을 때 미숙은 지양개에서 열린 군민련환대회에 참가하였다가 혁명군에 자기 나이또래의 녀대원들이 많은데 크게 감동되여 입대를 탄원하였던것이다. 그는 8련대에 소속되여 아버지한테서 배운 의술로 경상자들을 치료해주고 작식일도 도왔으며 남패자에서 북대정자에 이르는 그 간고한 행군의 시련도 용케 이겨냈었다. …

담가가 산마루에 올라와서 릉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환자는 머리우에까지 뒤집어썼던 모포를 들치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담가의 앞채를 멘 우악스럽게 생긴 대원이 뒤돌아보며 바람을 맞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일렀으나 연미숙은 그 소리를 전혀 못들은듯 생각깊은 눈으로 하늘만 쳐다보았다. 나무가지들사이로 비껴드는 석양이 부드러운 해빛에 피기없던 얼굴이 감빛으로 물드는가 하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이 은실처럼 반짝이였다. 하늘에서 너울너울 날아내린 락엽이 한잎 또 한잎 모포우에 소리없이 떨어져 한들거렸다.

녀대원은 최성배를 생각하는지 호수처럼 맑고 고요한 눈에 따스한 감정의 그늘이 어른어른 어리는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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