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7

 

인간세상과 완전히 격페된 함흥형무소의 밤.

콩크리트울담을 높이 둘러치고 그 우에 철조망까지 늘인 그 몰인정과 증오, 죽음의 세계에는 공동묘지에서와 같은 괴괴한 정적속에 써늘한 랭기가 흐르고있었다.

권영벽은 고문장의 통나무기둥에 결박당해있었다. 그의 가슴과 허리, 팔다리는 쇠사슬로 그 통나무기둥에 비끄러매여있었다. 물비린내, 피비린내, 살이 타는 냄새로 숨이 컥컥 막히는 고문장… 선지피로 얼룩지고 물이 즐벅한 콩크리트바닥…

부러진 목검이며 가죽채찍, 대장간의 집게 같은 형구를 든 네댓명의 형리들이 둘러서서 그를 노려보고있었다. 《죄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있었으나 그자들은 숨을 씨근거리며 영악하게 이를 갈았다.

중의 머리를 한 땅딸보예심원이 안경알을 번뜩이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대라, 대! 사령부에서 장백을 걸쳐 갑산쪽으로, 국내깊이 뻗은 비밀조직선을 모조리 대라! 우리한테 드러난 조직선이 전부가 아니란걸 알고있어. 대- 대- 대란 말이다!》

《…》

권영벽은 침묵으로 항거했다.

《권영벽선생, 아닌보살하지 마시오. 당신은 제국의 형사들을 너무 얕보고있소. 나만 해도 대성중학시절부터 림수산과 권수남(권영벽의 아명)의 뒤를 밟아왔소. 당신이 공산사령부의 파견을 받아 장백현 17도구에 내려와서 리제순이와 손을 잡고 박문상을 끌어당긴거랑 다 알고있었소. 그 박달을 사령부로 안내해준것도 당신이고… 박달이 백두산밀영에서 김일성 접견을 받았을 때 그곁에 앉아있은 당신이 모른다는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광복회조직선이 갑산경내를 벗어나 풍산, 삼수는 물론이고 북청까지 뻗어나왔다는 단서를 잡았다.》

권영벽은 피가 즐벅한 이마에 엉켜붙은 머리칼사이로 놈을 흘깃 쏘아보았다. 그자는 몇몇 사람들이 고문에 못이겨 비명과 함께 내지른 몇마디 소리만 가지고도 당신네 조직선이 어디까지 뻗었는지 알수 있다고 했다.

권영벽은 생각했다.

(혹시 어느 누가 고문에 못이겨 정말 무엇이라고 소리친게 아닌가? 아니면… 이놈들이 내 마음을 움직여보자구 거짓을 꾸며댄것인가?)

《야, 너 우리가 기만한다고 생각하지?》하고 다른자가 소리쳤다. 뒤쪽에 집게 같은것을 들고 서있는자가 랭소를 머금고 뇌까렸다.

《자식이, 여기 고문맛을 그만큼 보구두 그따위 생각을 해? 엉? 또 시작해볼가. 이번엔 귀때기를 뜯어내고말테다.》

땅딸보예심원이 제법 사리에 맞는 소리처럼 차근차근 일렀다.

《권선생, 리제순이와 박달은 당신때문에, 후에 올 량심의 가책이 두려워 불지 못하고있소. 그래서 고문이 계속되고 박달은 척추가 부러졌소. 리제순은 눈알이 터지고 이발이 다 부서졌소. 이제 더 계속되면 죽음이요. 심문도중에 6명이 죽었소. 나는 솔직히 다 말해주오. 오늘은… 당신네가 입을 다물고있는 조국광복회조직이란 기껏해야… 우리가 이제 잡아봐야 산골에서 감자농사나 짓는 암둔하고 우매한 농사군 십여명일거요. 그런것들을 보호하자구 출중한 혁명가들인 리제순이나 박달이 목숨까지 바친단 말인가. 당신은 더 말할것도 없구… 타산해보라. 그 명석한 뇌수로… 공산주의혁명가들의 척도로 생각해봐도 대의를 위해 작은것을 희생시키는건 있을수 있는 일이고 례사로운 일이 아닌가?》

쇠사슬로 기둥에 칭칭 묶여있는 권영벽은 갑자기 머리를 번쩍 쳐들고 광인처럼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핫하하… 핫하하!》

그 웃음소리에 고문실이 떠나가는듯 하였다.

땅딸보예심원이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무엇이라고 손짓하자 그곁에 서있던 놈이 바닥의 바께쯔를 들어 수인의 얼굴에 물벼락을 안겼다.

수인은 헉 하고 느끼며 쏟아져내리는 물을 푸- 푸 내뿜었다.

적황색으로 이릉거리는 불덩이같은것이 희뿌연 물안개속에서 눈앞으로 다가오고있었다. 구레나릇이 시꺼먼 작자가 숯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서 시뻘겋게 단 쇠꼬챙이를 꺼내들고 다가오는것이다.

웃도리를 벗어던진 그자는 수인이 아니라 제가 그 불꼬챙이에 지지우는듯 가슴팍이며 팔근육을 푸들푸들 떨며 악- 하고 단말마적인 함성을 터뜨리면서 달려들었다. 살인마는 수인의 얼굴앞에 시뻘건 쇠꼬챙이를 위협적으로 휘둘러대다가 미친듯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그의 어깨와 팔에 붙이였다. 찌지직… 하는 소리, 살이 타는 연기와 냄새…

수인은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 그의 몸에 칭칭 감긴 쇠사슬이 철컥거리는 소리…

《이놈들아- 짐승들아- 야만들아-》

그리고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의식을 잃은것이였다.

권영벽은 리제순, 박달, 지태환을 비롯한 180여명의 조국광복회 관계자들과 함께 7개월동안 혜산경찰서 구류장에 감금되여 취조를 받다가 여기 함흥형무소로 이송되였다. 그사이 권영벽은 조국광복회의 국내조직에 될수록 피해가 덜 가게 하려고 피어린 옥중투쟁을 벌려왔다. 그것은 자신을 희생시켜 국내조직을 구출하는 결사의 투쟁, 스스로 죽음의 함정으로 뛰여들며 국내동지들을 보호해주는 전대미문의 투쟁이였다.

그는 예심과정에 박달과 국내조직이 단행한 주구청산을 자신이 직접 조직지휘했으며 유격대에서 보낸 무장소조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가 악질주구 한놈한놈을 찾아가서 쏴제꼈다고 주장하였다.

일제의 예심원들은 군사정찰자료들을 보고하여 빨찌산의 대부대를 보천보로 이끌어온 국내조직을 모조리 소멸하고 그 책임자인 박달을 《살인죄》로 몰아 없애버리려고 발광하였다.

권영벽은 일제의 마수를 국내조직과 박달로부터 떼내여 자기한테로 끌어당기려고 온갖 론거를 다 꾸며대며 완강하게 투쟁하였다.

일제의 예심원들과 형리들은 《죽으려고 기를 쓰는 괴이한 죄인》을 살려서 입을 열게 하려고 그를 야수적으로 고문하였다.

란타속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적은 몇번이였던가. 까무라쳐 며칠씩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적은 그 얼마였던가. … 마침내 놈들은 지쳐버렸다. 그리고 그토록 죽고싶으면 어디 죽어보라는 심보로 하여 그 《살인건》들에 대한 예심을 일단 중지하였다.

권영벽은 숨을 좀 돌리게 되였다.

그런데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어떤 인간이 고문에 겁을 먹고 굴복했는지 이미 적발된 국내조직밑에 복선으로 늘인 비밀지하조직이 숨어있다는것이 드러났다.

왜놈법관들은 이때까지 예심에서 종합된 자료들을 기각해버리고 심문을 새롭게 시작한다고 소동을 일으켰다.

함흥형무소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한듯싶었다.

그 소동속에서 권영벽은 미결감 2호동 13호실로 이감되여 매일밤 예심실과 고문장으로 끌려나가게 되였던것이다.

그날밤 형리들은 만신창이 되여 의식을 잃은 권영벽을 감옥복도를 따라 끌고와서 13호실에 처넣었다. 그 감방안의 미결수 8명이 그를 받아 안구석쪽에 눕혀놓고 피칠갑이 된 이마며 목을 씻어주고 불에 험하게 덴 어깨와 팔다리에 자신들의 웃옷을 벗어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그들은 홍원농조사건, 쏘만국경월경사건, 영흥농조사건, 함흥적색동지회사건, 풍산천도교사건, 삼수살인사건, 고서점을 열어 불온서적을 수집판매한 사건 등으로 검속되여 예심을 받고있는 미결수들이였다.

새벽녘에 혼수상태에서 헤여난 권영벽은 어딘가 먼곳에서 융융거리는듯한 말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그 말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고싶었지만 고개를 돌릴 기운조차 없어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있었다.

《어제 밖에 끌려나가 변소를 치다가 옆감방에서 나온 〈죄수〉한테서 들었는데 기가 막혀서 참… 저놈들이 글쎄 사형수들의 머리칼을 뽑아간다누만… 그걸루 쬐꼬만 갓이나 짚신따위 공예품을 만들어가지구 왜땅에 가서 골동품수집가들한테 팔면 굉장한 돈을 받는다누만… 에- 에- 끔찍한놈들… 이름난 사형수의 모발일수록 더 비싸다고 하지 않소.》

《모를 소리…》

《아니요. 정말이요. 일본에 그런 골동품수집광들이 있다오. 옛날 임진왜란때 우리 선조들의 인피를 공물로 받아갔다는 사무라이들의 후예가 아닌가 말이요. …》

다른 목소리가 끼여든다.

《임진왜란때에는 자기가 죽인 조선군졸상투나 귀를 베가는 놈들이 많았다우. 제놈이 세운 무공을 자랑하자구… 에, 지독한 놈들이지…》

또 다른 목소리…

《왜땅의 기생년들한테는 괴상한 미신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어. 강도나 살인범, 사령수의 모발로 기묘하게 엮은 패물을 치마속에 달고다니면 자기한테 사내들이 끓이구 돈이 새떼처럼 날아들어 몸에 붙는다나. 더러운것들…》

권영벽의 눈앞에 고문장에서 자기 눈으로 육박해오던 적황색 불덩리가 떠오르고 형리의 광적인 야성이 메아리쳐왔다.

《야- 아- 아- 죽- 인- 다-》

그 순간의 전률과 몸부림이 되살아나고 가슴속에 증오의 불길이 터져올랐다.

(아, 가증스러운 놈들! 아, 칼탕을 쳐서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을 놈들! 아- 아- 여보게 오중흡이, 박덕산이, 림수산이 지금은 어디, 어디에 있는가. 왜놈들을 모조리 사정없이 족쳐주게. 그러면 땅속에 묻혀서도 내 령혼에 안식이 올거네. 수산이 여보게- 아, 동지들!)

그의 꾹 내리감은 눈가에 후더운 눈물이 번들거렸다.

새벽녘에 권영벽은 와뜰 놀라 몸을 일으키려다가 도로 쓰러졌다. 신음소리를 내며… 고문에 시달린 육체의 모든데가 찢어지는것 같아서였다.

수인은 눈을 크게 뜨고 옆벽에 한점을 응시하고있었다. 눈동자에서 새파란 불꽃이 이는듯 했다.

그는 꿈결에 백두산동쪽의 수림속에서 빨찌산부대가 어디로인가 이동하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너무도 그리워 가슴태우며 속으로 부르고 또 불러도 꿈속에조차 나타나지 않던 부대, 전우들의 행군대오를 멀리에서 바라본것이다.

(혹시 사령부와 주력부대가 백두산서남부에서 동쪽으로 전구를 옮긴것인가. 내가 너무 생각하니 꿈에 언뜻 보인것인가, 아니다. 혜산사건후 지하조직들이 다 파괴되여 의거할데가 없고… 또 적의 무력이 집중되기때문에 서부에서 동부로 옮겼을수 있다. …)

권영벽은 만약 그랬다면 사령부가 동부의 지하조직선들을 찾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끈지끈 쑤시는 머리를 싸쥐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내가 삼도만과 처창즈에 있을 때 꾸려놓은 조직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우리 부대들을 도와나설것이다. 그들이 림수산이나 박덕산을 만나면 나를 추억할수도 있겠지. … 이 수인에 대해… 이 인생에 대해 뭐라고 할가. … 아니, 아니다. 아니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우리 주력이 백두산동쪽에 나타나면 적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보천보전투때 쓴맛을 봐서 인민들 지원을 차단하자고 조국광복회조직들에 대한 일대 소탕작전을 벌린다. 그는 가슴을 조이며 생각을 계속했다. … 그런데… 한데 여기 형리들은 왜… 도대체 왜… 일언반구도 없는가. 내가 삼도만과 처창즈에 있었다는걸 알겠는데… 지하조직들과의 련계가 깊었다는것도 짐작하겠는데?… 사건심리를 혜산사건에 국한시키고있는가? 아무것도 모르고있는가 ? 그럴수 없어. 혜산사건을 결속한 다음에?…

권영벽은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그의 추리는 불길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 우리 주력이 백두산동북지구에서 유격활동을 맹렬히 전개하면 여기 놈들은 나한테 이리떼처럼 달려들것이다!…

권영벽의 눈길은 옆벽의 한점에 박힌채 움직일줄 몰랐다. 그의 눈동자에서 불이 황황 이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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