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온 황해도땅을 벌컥 뒤집다싶이 하면서 김막동이네 화적패를 잡는다고 도감영의 군사들과 각 고을의 군사, 역졸, 아전, 통인, 사령들 할것없이 몽땅 떨쳐나서 마을과 마을, 산과 골짜기를 누벼가면서 수색을 하였건만 모두 닭쫓던 개신세가 되고말았다.

소문도 나면 석달이요 흠도 나면 석달이라고 세월이 감에 따라 막동이네를 붙잡는다는 열이 점점 식어졌다. 게다가 도관찰사 리계동이 벼슬이 좌천되여 한양으로 입성하자 누구 하나 김막동이네를 잡으라고 닥달질하는 사람도 없는지라 열기는 점점 식어버리고말았다.

도관찰사로 새로 부임되여온 김극검도 감영에 틀고앉아 김막동이네 패거리에 대해 한두번 물어보았을뿐 입에 더 올리지 않았다. 남에게 튄 불찌를 내가 구태여 받아안겠느냐 하는 심사인지 아니면 아직 불똥이 튕기지 않는걸 봐서 그놈들이 다른 도의 지경으로 도망쳤다고 생각을 하였는지 하여간 김막동이네 일을 더 상정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추운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조세를 빨리 받아들이라고 불같이 독촉하는통에 도감영의 말라꽹이 호방만 달달 볶이워돌아갔고 스무동이들이 물독같은 뚱뚱보 형방은 피둥피둥 살만 더 졌다.

몇달전만 해도 도감영으로부터 고을동헌을 거쳐 하바닥 아전나부랭이에 이르기까지 모여앉으면 의례히 입에 오르던 김막동의 이름은 이제는 그가 누구인가 할 정도로 없어지고말았다.

허나 전과 다름없이 김막동이네 이름을 속에 품고 범새끼가 먹을것을 노리듯 기회만 엿보고있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방아역 역리 리악과 수안고을의 최형리였다.

리악이로 말하면 김막동이한테 코가 깨여지고 또 그때문에 옥에 갇혀 억울한 매를 맞고 장독이 올라 고통까지 당했던지라 그에게 있어서 김막동은 백년숙적이 되였던것이다.

수안고을 최형리는 매골에 사는 제 애비 최부자가 막동이네 패거리한테 볼기찜질을 당한 어혈로 얼마 안있어 덜컥 죽어버렸으니 리악이 못지 않게 막동이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원쑤가 되였다.

이렇게 자기네때문에 관찰사가 뒤바뀌고 몇달동안 온 황해도땅이 뒤집혀돌아가는줄도 모르고있는 김막동이네는 세상에 둘도 없는 무릉도원인 무원골에서 무사태평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깊은 땅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맑은 샘처럼 무원골에 사는 막동이네 생활은 세월이 흐를수록 기름기가 찰찰 넘쳐났다.

흘러가는 세월의 달구지에 올라 그들의 태평생활도 함께 굴러서 어느덧 3년이 되였다.

그사이 무원골사람들의 생활에서는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운데서도 제일 큰 변화는 무원골의 새 주인들이 태여난것이다.

무원골에 살림을 편 이듬해 6월 초닷새날이였다.

이날 막동이네는 봄에 해토가 되자마자 부지런히 무텅이질(황무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심는 일)을 한 밭에 나가 잎새마다 퍼렇게 독이 올라 실하게 자라는 수수밭과 조밭에 들어가 두벌김을 매고있었다.

수수밭 옆에는 실하게 영글은 보리이삭들이 바람결에 흔들거리고있었다.

깐깐 오월이요 미끄렁 류월이라고 이제 당장 보리가을을 해야지 싱싱 돋아나는 수수와 조밭김도 매야지 일손이 딸려 고양이손도 빌려야 할 판이라 그네들은 언제 앉아 한담을 할새도 없이 바삐 돌아갔으나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량반부자네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는 밭에서 풀 한포기 뽑아도 손등이 시리더니 자기 밭에서 자기가 심은 곡식을 가꾸고있다고 생각하니 일을 하면 할수록 성수가 나 하는 그들이였다.

해가 한낮에 거의 기울어져갈무렵이였다.

김매기군들을 위해 시원한 샘물을 길어오려고 마을에 들어갔던 이순이가 무엇이라고 소리치면서 달려왔다.

이순의 부름소리에 김을 매던 막동이와 윤산이 그리고 봉산이와 갑녀, 수안이와 을녀도 모두 허리를 펴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이순이는 내가의 징검다리를 급히 뛰여넘다가 헛디뎌서 물에 첨벙 빠졌다.

막동은 윤산에게 다급히 물었다.

《아니? 윤산이, 이순이가 왜 저러나?》

《글쎄.》 하고 윤산은 머리를 기웃했다.

《윤산아! 뭘해! 빨리 가보지 않구.》

윤산은 김매던 호미자루를 집어던지고 이순이쪽으로 달려갔다.

물참봉이 된 이순이 물속에서 나오면서 자기를 마주오는 윤산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순의 두손을 덥석 잡은 윤산이 또 무엇이라고 소리치는것 같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막동이네가 서있는쪽으로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막동형님! 큰일이 났수다.》

그 말에 막동은 윤산이쪽으로 마주 달려갔다.

《윤산아, 무슨 일이냐?》

윤산은 헐떡헐떡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막동형님, 큰일이 났수다, 큰일이 …》

《자꾸만 큰일큰일 하지 말구 어서 말해라.》

《글쎄 큰일이 났다지 않아요.》

뒤따라온 봉산이 헤덤벼치는 윤산에게 눈을 흘겼다.

《아니 윤산형님, 도대체 무슨 큰일이 났다는거예요? 어서 말해야 알지요.》

윤산이 불에 놀란 황소눈이 되여가지고 봉산에게 되물었다.

《내가 여직 그 말을 안했어?》

《그래요.》

윤산이 무작정 막동을 곡식단 안듯 덥석 안아올리면서 소리쳤다.

《막동형님, 기뻐하시우. 봉옥형수님이 글쎄 아이를 낳았대요, 아이를. 하…하…》

그 말에 무슨 큰 걱정거리라도 생겼는가 해서 속이 한줌만 해있던 그들이 윤산을 핀잔했다.

을녀가 막동을 그러안고 돌아가는 윤산의 어깨에 손방망이질을 해댔다.

《에그,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 말해야지 우린 무슨 큰일이 났나 했지요.》

《아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다구. 그렇지 않수 봉산 제수?》

윤산은 오히려 제편에서 팅팅거리며 이번에는 곁에 서있는 봉산이 처를 건드렸다.

그 말에 부끄러운듯 얼굴을 살짝 붉힌 봉산의 색시인 갑녀는 남편의 등뒤에 숨으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 모양을 보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물시물 웃고있던 수안이 물었다.

《윤산형님, 그런데 형수님이 도대체 아들을 낳았소? 딸을 낳았소?》

《엉?… 그건 저…》

윤산이 젖은 치마를 쥐여짜는 이순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순이 그만 어쩔줄 몰라하였다.

《난 그저 막동오빠네 집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애기울음소리가 나서 …》

급해난건 윤산이다.

《아니, 그럼 뭘 낳은지도 알아보지 않았단거야. 에이 참…》

막동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윤산아, 그만해라. 사내든 계집애든 둘중에 하나겠지.》

《거야 그렇지요, 하지만…》

윤산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제풀에 흥에 겨워 뛴것이 간지러운 모양이였다.

봉산이 모여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기에서 그럴것이 있어요? 이제 당장 달려가서 알아보면 될게 아니요. 막동형님, 어서 가자요.》

그 말에 막동은 호기심은 동했으나 어쩐지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공연히 얼굴이 벌개져서 목덜미만 문질렀다.

잔치상을 받는 신랑보다 둘러리가 더 좋아 벌쭉거린다더니 옆에 있는 윤산이며 봉산이, 수안이네가 더 등이 달아 덜썩거렸다.

《막동형님, 어서 가시자요.》

《우리 먼저 가겠어요.》

그들이 내가의 징검다리에 막 껑충껑충 뛰여오르는것을 본 이순이 황급히 소리쳤다.

《아니, 그렇게 가시면 안돼요!》

《?…》

이순이 어정쩡해 서있는 그들앞으로 다가서며 어린애 타이르듯 말했다.

《그렇게 흙이 발린 몸으로 가시겠어요? 가더라도 얼굴이랑, 손이랑 다 씻고 가셔야지.》

그 말에 봉산이 무릎을 철썩 쳤다.

《역시 둘째형수님은… 옳수다. 이 무원골에 새 주인님이 나오셨는데 이렇게 갈수야 없지요. 목욕재계를 하구 새옷을 차려입고 새 주인님을 면대해야지요. 자, 이 봉산이는 목욕재계를 합니다.》

봉산이 제 먼저 온몸을 시내물에 통채로 철썩 내던졌다.

그뒤를 따라 윤산과 수안이도 좋구나 하고 소리치면서 옷을 입은채로 내물에 몸을 던졌다.

그 모양을 본 이순이와 녀인들도 웃음을 지으면서 내가에 들어가 손이며 얼굴을 씻었다.

그러나 막동이만은 어정쩡히 서있었다.

막상 자기의 아이가 태여났다고 하니 꼭 꿈을 꾸는것 같은게 어쩐지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막동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옷을 입은채 물속에 들어가 몸을 씻은 윤산이네는 물이 철철 흐르는채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웃고 떠들면서 제 집으로 달려갔다.

내가의 바위돌에 앉아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막동은 천천히 내물에 손을 담그어 씻고는 와락와락 세수를 하였다.

막동이 집앞에 이르자 어느새 왔는지 저들의 집에 갔던 윤산이네며 봉산이, 수안이네가 쌍쌍이 무슨 명절놀이에 참가하러 온듯 새옷들을 갈아입고 마당가에서 서성거렸다.

방안에서는 고고지성을 터뜨리는 새아기의 야무진 울음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도 옹골찬지 온 무원골안을 들었다놓는듯싶었다.

마당에 모여선 사람들의 얼굴에선 행복의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다.

윤산이 참지 못하겠는지 방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어머니, 오래 기다려야 되나요?》

방안에서 한씨의 기쁨어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구.》

《어머니, 도대체 아들이나요, 딸이나요?》

《자네들처럼 꼬투리를 달았네. -》

그 말에 윤산은 막동의 손을 잡고 춤추듯 덩실거렸다.

《형님 들으셨수? 아들이래요, 아들!》

마당에선 사람들모두가 너무 좋아 어깨를 늠실거렸다.

이윽고 방안문이 열리면서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은 한씨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자, 어서들 들어오라구.》

그 말에 윤산이 제먼저 들어가려고 토방우에 올라서는데 뒤에 선 이순이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이참, 왜 그리 덤비세요. 애기아버지가 먼저 들어가셔야지.》

윤산이 이마를 툭 쳤다.

《그렇지 막동형님, 어서 먼저 들어가시우다.》

그러자 곁에 섰던 수안이와 봉산이가 막동의 등을 떠밀었다.

그들에게 등을 떠밀려 막동이 먼저 방안에 들어서자 모두들 우르르 따라들어갔다.

방안에 앉아있던 한씨가 강보에 싸인 애기를 덥석 안아 막동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사람, 어서 안아보게, 자네 아들일세.》

막동은 엉겹결에 애기를 받아안고 어쩔줄 몰라했다.

막동의 품에 안긴 애기는 제 아버지를 알아보기나 한듯 한동안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애기가 우는 바람에 막동은 어쩔줄 몰라 헤덤볐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불우에 누워서 막동의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던 봉옥이도 보조개를 살짝 지었다.

새로 태여난 애기는 막동의 손에서 윤산에게로 또다시 봉산이며 수안이에게, 이순이, 갑녀, 을녀에게 한차례 돌고서야 어머니품에 안기였다.

봉옥은 돌아누워 갓난 애기에게 첫젖을 먹이려고 하였다.

부엌에서 종지를 들고 올라온 한씨가 봉옥이를 만류했다.

《가만, 먼저 이것부터 먹여라.》

한씨가 종지에 담은 물을 숟가락에 떠서 후후 불더니 애기의 입에 떠넣어주었다.

곁에 있던 봉산이 의아해서 물었다.

《어머니, 이건 무엇이와요?》

《산삼 달인 물이다. 이걸 애기가 첫젖을 먹기 전에 먹으면 장수하느니라.》

《히야 그래요? 그럼 앞으로 우리 애기에게두 먹여야 되겠어요.》

《그럼, 여부가 있나. 그저 아들딸을 많이만 낳으라구.》

《알겠어요. 나두 인차 아들을 낳겠어요.》

《원, 저런 아이를 제가 낳나, 색시가 낳지.》

그 말에 모두들 으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봉산의 말에 부끄러워난 갑녀가 남편의 잔등을 꽉 꼬집어놓았다.

그러자 봉산이 아부재기를 치면서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바람에 모두들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윤산이 한씨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 기쁜 날에 가만히 있겠어요? 잔치를 차려야지요.》

한씨는 정찬 눈길로 그네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렴, 잔치를 차려야지, 내 이미 움속에 송화주도 담그어놓았구 노루고기서껀 다 있으니 어서 잔치를 하세나.》

이윽고 방안에 잔치상을 차려놓은 무원골사람들이 그 주위에 빙 둘러앉았다.

상우에는 노루고기, 메돼지고기며 산나물채를 비롯해서 무원골의 특산물이 상다리부러지게 놓여있었다.

모두들 한씨가 담근 송화주를 마시려고 하는데 여직껏 말이 없이 웃음만 짓고있던 수안이가 앞으로 나섰다.

《가만, 어머니, 잔치라는거야 다 인사례법이 있는데 그저 지나겠어요?》

《엉? 그래 자넨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그럼 모두들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대루 하시라구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여직껏 어리무던해보이기만 하던 수안의 엉뚱한 출연에 호기심이 동했던 모양이였다.

수안은 제법 틀지게 앉아 잔치를 주관했다.

《에, 자고로 출생신인은 점지성명이라 하였거늘 먼저 아버지 되는분이 새 아기의 이름부터 지어주사이다.》

《옳사와요. -》 하고 모두 박수를 치며 막동에게 어서 애이름을 지으라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여직껏 부끄러움을 타면서 말이 없던 막동이가 마치도 이때를 기다리기나 한듯 불쑥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지금껏 아이의 이름을 생각하고있었는데… 이 무원골에서 아들을 낳으면 무남이라고 부르고 딸을 낳으면 무옥이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이렇게 아들을 낳았으니 난 무남이라고 부르려고 하네. 어머니 생각엔 어떠세요?》

한씨는 입이 함박만 해졌다.

《뭐랄게 있니, 무남이라, 정말 이름이 좋구나.》

자기 이름을 지어주는것을 알기나 하는지 강보에 싸여있는 애기도 눈을 또랑또랑 뜬채 자기 주위에 모여앉은 사람들을 쳐다보고있었다.

애기를 번쩍 안은 윤산이 소리쳤다.

《이녀석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무남이다. 무남이, 무남아-》

윤산의 손에 떠받들린 아기는 알았다는듯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허, 그녀석이 제법 어른들의 말을 다 알아듣는것 같애.》

《무남아-》

모두들 무남이에게 대고 손벽을 쳤다.

이렇게 애기의 이름을 짓자 수안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상호봉시라고 무원골의 새 주인인 무남이의 앞날을 축하해주겠어요.》

상호봉시라는건 사내아이가 태여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에 쑥대로 만든 화살을 재워 동서남북 사방에 대고 쏘아서 앞으로 출중한 사내가 될것을 비는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풍속이였다.

웅심깊은 수안이 어느새 준비해놓았는지 뽕나무로 시위를 맨 활에 쑥으로 만든 화살을 재우더니 마당가에 나가서 쏘면서 소리쳤다.

《좌청룡우백호라 먼저 주작(남)이요, 다음은 현무(북)요, 그다음은 청룡(동)이요, 마지막으로 백호(서)요, 잡신들은 물렀거라.》

수안의 행동거지를 모두들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박수를 쳤다.

이통에 모두는 수안을 새롭게 보았다.

을녀는 더더욱 제 서방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고 은근히 서방에 대한 자부까지 느끼게 되였다.

수안을 보고 막동이 물었다.

《수안동생, 자넨 언제 이런걸 다 배웠나? 우린 여직껏 살면서 이런것을 알지조차 못했는데…》

수안은 쑥스러운듯 머리를 숙였다.

《난 여섯살때부터 여직껏 부자집 머슴살이를 하였지요. 그러다나니 별의별 일을 다해보았어요. 내가 열일곱살나던 해 겨울이였지요.

하루는 집주인이 나를 찾더니 당장 밖에 나가 뽕나무아지와 쑥대를 얻어오라고 내쫓는게 아니겠나요? 그래서 허리에 도끼를 차고 산에 올랐는데 뽕나무아지는 그런대루 찍었는데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에서 어디 가서 쑥대를 찾을수 있어야지요?

온나절 눈바람속에 헤매면서 돌다가 몸이 꽁꽁 언채로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왔지요.

그런데 주인놈은 네놈때문에 집안의 경사를 망친다고 하면서 당장 쑥대를 얻어오라구 또 내쫓았지요.》

여기까지 말한 수안은 설음이 북받쳐올라 더 말을 잇지 못하고있다가 이렇게 계속했다.

《주린 배를 참고 또다시 벌에 나와 눈속에서 헤매다가 겨우 말라 죽은 쑥대를 하나 찾아쥐였는데 그만 기절하고말았지요.

후에 눈을 떠보니 행랑방인데 나와 함께 종살이를 하는 박순누이가 내 입에 미음을 떠넣어주더군요.

그런데 주인집 대청마루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주인령감이 마루우에 나와서서 뽕나무활에 쑥대화살을 재워서 사방에 대고 쏘면서 소리쳤지요.

그때 박순누이가 말하는데 주인네 집에 손자가 태여났는데 그 명복을 비느라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때 내가 구하지 못한 쑥대를 그 누이가 얻어왔더군요. 그 누이가 아니였다면 난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지요.

후에는 이렇게 고마운 형님들을 만나서 난생처음 사람답게 살게 되였지요. 내 그래서 오늘 우리 무남이가 태여났길래 상호봉시를 한것이예요. 우리라구 부자놈들보다 못할게 있어요?》

수안의 그 말에 모두들 눈굽을 찍었다.

왜 그렇지 않으랴. 그들모두가 이 무원골에 오기 전에는 수안이와 꼭같은 말하는 짐승처럼 살아왔던것이다.

막동은 두눈을 슴벅거리며 수안의 손을 잡았다.

《수안이 이사람, 고맙네. 아무렴 우리라구 부자놈들보다 못한게 뭐 있나? 다 같은 사람들인데…》

수안은 어줍게 말했다.

《이거 안됐어요. 이 즐거운 날에 쓸데없는 말을 해서…》

윤산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돌려세우려는듯 수안의 앞에 넙적 엎드렸다.

《수안나으리님, 다음차례는 무엇이오이까. 어서 분부를 내리시와요.》

그러자 수안이도 제법 량반흉내를 내였다.

《이제는 모두 진탕망탕 먹으면 되느니라.》

윤산이 목을 빼들고 소리쳤다.

《예-잇, 모두들 진탕망탕 잡수시란다. -》

윤산의 행동거지에 또다시 흥이 살아났다.

모두들 상앞에 모여앉아 즐겁게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무남이의 앞날을 축복하였다.

윤산이의 막 불러대는 타령이며 봉산이의 유명한 봉산탈춤놀이, 수안이의 입재주 등 그들은 이날 자기들이 가지고있는 재간이란 재간은 다 털어놓았다.

무남의 출생잔치는 서산에 해가 기울어질무렵에야 끝났으나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땅거미가 슬금슬금 기여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쌍쌍이 손을 잡고 제집으로 돌아갔다.

이날은 무원골이 생겨 처음 보는 경사의 날이였고 명절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마음은 앞으로 무원골에 펼쳐질 행복한 래일을 그려보며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때로부터 넉달, 다섯달후에는 봉산의 처 갑녀가 딸을, 수안이의 처 을녀는 아들을 낳았다.

봉산의 딸애이름은 무옥이, 수안의 아들이름은 무성이라고 불렀다.

하여 막동이네가 무원골에 자리잡은지 한해남짓한 사이에 인총이 셋이나 늘었다.

돈을 놓고는 웃지 못해도 아이들을 놓고는 돌부처도 웃는다고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놓고 무원골사람들은 날마다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다만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면 어찌된 일인지 윤산의 처 이순이가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한것이였다.

이것으로 하여 막동을 비롯한 마을사람들모두가 왼심을 썼으나 이태가 넘도록 이순이한테서는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그러자 막동은 윤산이가 굳이 만류했건만 동생의 불행을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고 하면서 수안이가 살던 마을에 용한 주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원골을 빠져나가 그에게서 약처방을 가지고 왔다.

주부가 써준 처방을 가지고 막동이네는 무원골안의 산판은 물론이요 은밀히 수안, 신계쪽으로 나가 겨우내 말려두었던 짐승가죽을 넘기고 약재를 얻어왔고 겸사해서 소금을 비롯한 살림살이에 쓸 물건들도 바꾸어왔다.

이태째 온 마을이 떨쳐나서 이순이의 병구완을 하였건만 나무에 달린 물고기를 바라는 격이 되고말았다.

이렇게 되자 더욱 조급해난것은 윤산이와 이순이였다.

자기들을 위해 친혈육처럼 뛰여다니는 막동과 동생들을 볼수록 죄송스러웠다.

윤산은 막동이와 동생들에게 자기네는 일없으니 제발 이러지 말라고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당부하였건만 그럴수록 그들은 더 극성이였다.

오죽했으면 윤산이 정 이러면 자기는 무원골을 떠나고말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으랴.

한가위를 며칠 앞둔 어느날이였다.

며칠전 신계에 있는 박순누이네 집에 볼일이 있다면서 떠나갔던 수안이가 큰 옹배기를 들고 마을어구에 나타났다.

때마침 밭에 나왔던 막동은 옹배기를 두손으로 맞잡고 걸어오는 수안의 모습을 먼저 알아보고 그에게 달려갔다.

막동이 마중오는것을 본 수안은 옹배기를 땅에 내려놓고 펄썩 주저앉았다.

수안에게 달려간 막동은 깜짝 놀랐다.

물이 가득 담긴 옹배기안에서는 솥뚜껑같은 자라가 살아움직이고있었다.

《아니? 이건…》

막동은 놀라운 눈길로 수안을 쳐다보았다.

수안은 어줍게 웃었다.

《자라예요. 둘째형수 병에 자라피가 좋다기에…》

《이걸 어디서 구했나?》

《박순누이한테서요.》

《그럼 신계에서부터 예까지…》

무원골에서 신계까지는 백여리 실히 되였다.

그러니 산 자라를 옹배기에 담아가지고 백여리길을 왔던것이다.

막동은 더욱 놀라운 눈길로 수안을 쳐다보았다.

수안은 《형님, 이걸 둘째형수한테…》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산 자라가 담긴 옹배기를 그러안고 평길도 아닌 험한 산자락길을 오다나니 기운이 진했던것이다.

막동은 황급히 수안이를 부둥켜안았다.

《수안아, 너 왜 그러니?》

막동이 거듭 불러서야 수안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뜨직뜨직 말했다.

《형님, 난 일없… 너무 졸려서…》

그 말을 들은 막동의 가슴은 뭉클했다.

《자식두, 그때 진작 말을 할것이지…》

《형님두 참, 어서 이걸 둘째형수한테… 난 좀 자겠어요.》

막동은 이순이를 생각하여 백리 험한 길을 자라옹배기를 안고온 수안의 지성에 목이 꽉 메여올라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머리만 끄덕거렸다.

막동은 웃저고리를 벗어 둘둘 말아가지고 풀숲에 누워 혼곤히 자고있는 수안의 머리를 받쳐주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이때 여기로 윤산과 봉산이가 달려왔다.

《수안이가 왔다면서요?》

윤산이 큰소리로 물었다.

막동은 황급히 윤산에게 조용하라고 손짓했다.

말없이 막동의 곁에 다가온 그들은 자라가 들어있는 옹배기와 그옆에서 자고있는 수안이를 번갈아보면서 의아한 눈길로 막동을 바라보았다.

막동은 그들의 손을 잡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자기들의 말소리가 달콤하게 자고있는 수안에게 들리지 않을만큼 가서야 막동은 그들의 손을 놓고 풀숲에 주저앉았다.

《형님, 도대체 웬일이시우?》

윤산이 재차 물었다.

그제야 막동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아무래도 난 자네들의 형구실을 못할 놈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봉산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물었다.

《자네들도 생각나지. 요전번에 수안이가 신계에 갔다오겠다고 고집을 쓰던 일이…》

《예, 그런데요?》

《사실 난 그때 수안이가 웬일인지 신계에 있는 누이네 집에 가겠다고 말하지 않길래 속으로 언짢게 생각했네.》

《…》

《…》

《말로는 우리 서로가 사지동거를 하는 친혈육과 같다고 하면서두 속을 주지 않는다구 말이야. 그런데 오늘 수안이를 보니 내가 정말 옹졸하구 고루한 골량반같은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도대체 수안이가 어떻게 했길래 그리 상심하셨수? 그리구 그 자라는 도대체 뭣이요?》

윤산이 물었다.

막동은 눈물어린 눈길로 윤산의 손을 잡았다.

《그건 이순이한테 주려구 저 신계에서부터 가져온거야. 자라피가 좋다구 하면서 산 자라를 넣은 옹배기를 안구 예까지 왔단 말일세. 신계에 간것두 그것때문에 갔구…》

《뭐라구요? 그걸 안구 여기까지 왔다구요?》

윤산은 펄쩍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러니 저 수안이가 고생인들… 오죽했으면 집을 코앞에 두구 여기서 잠들었겠나?》

윤산은 막동의 앞에 무릎을 푹 꺾고 주저앉았다.

《형님, 난 이럴 땐 어쩌면 좋소. 까짓 이순이 하나가 뭐라구 왜 이리들 극성이요, 예 형님. -》

막동의 앞에 엎드린 윤산은 어깨를 떨구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줄줄 흘러내렸다.

왜 그렇지 않으랴.

무원골에 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길가에 굴러가는 소똥 보듯 누구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생이였다.

그러던 그가 무원골에 와서 처음으로 인생의 참다운 맛을 알았고 막동이네와 만나 혈육의 뜨거운 정이란 어떤것인가를 체험하였다.

요근간에는 이순이의 병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는 형제들의 지성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모지름을 쓰고있는차에 오늘은 또 이렇게 수안이가 이순이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산 자라옹배기를 안고 백여리길을 달려왔다니 지성이면 이보다 더 큰 지성이 있고 혈육의 정이면 이보다 더 뜨거운 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막동은 말없이 윤산의 잔등을 어루만져주었다.

헉헉 흐느끼던 윤산은 와락 막동의 품에 안겨들었다.

《형님-》

《윤산아-》

둘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봉산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뭇사내들이 흘리는 감동의 눈물만이 아니였다.

서로서로 보살펴주고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려는 뜨거운 맹세의 눈물, 의리의 눈물, 인간의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눈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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