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29일

 

(제 15 회)

 

제 2 부

 

기발을 올려라

 

1

 

한낮의 땡볕이 내리쪼이여 산천이 노긋해진 때이다. 이 더위에 멋부리는것은 오로지 매미들뿐이다. 매미들은 이 나무 저 나무들에서 승벽내기로 울어댔다. 마치 이 더위속에 굴하지 않는것을 자랑이라도 하는듯 하였다. 달아오른 대지는 더운 김을 울컥울컥 토하고있었다.

한적한 숲속길로 말을 탄 네사람이 가고있었다.

주몽의 일행이였다.

대이의 추격에서 벗어난 뒤 주몽의 일행은 만일을 생각하여 하루동안 내처 달렸다. 그러다나니 사람도 말도 지쳤다. 앞서 가는 협부도 뒤를 따르는 오이와 마리도 말우에서 파초잎처럼 노그라졌다.

주몽도 눈시울에 납덩이를 달아맨듯이 눈이 감기고 온몸이 솜뭉치처럼 노근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고개를 흔들어 졸음을 털어버렸다. 이 며칠간에 있은 일들이 마치 수면우로 떠오르는 물방울같이 떠올랐다.

불길, 협부, 군사들, 어머니, 을나, 사냥군할아버지와 그 손자, 부리산, 곰보, 물소리, 홰불…

례나루스승!

서리짙게 내린 눈섭밑에서 번쩍이는 스승의 시선이 불타고있었다.

《주몽, 단군선인의 웅지를 이어 우리 겨레가 하나로 되여 복락할 새 터를…》

스승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그 눈만은 살아있었다. 스승의 모습은 주몽에게 너무나 방불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뒤로 어머니 류화와 을나, 고마운 사람들인 서불아저씨, 부추 등의 모습도 마치 산악처럼 우줄우줄 안겨왔다.

주몽은 부지중 큰숨을 들이키였다.

장차 어찌 할것인가?

이전에는 오로지 청운의 꿈을 실현코저 여차하니 떠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칠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당하고보니 숫제 난감한 처지이다.

남쪽 어디까지 가야 하며 또 거기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어떤 운명이 과연 주몽과 벗들을 기다리고있을것인가. 아직은 안개빛이 짙다.

하지만 부딪치자! 길은 있을것이다. 반드시 길은 있을것이다. 다만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되여 구차하게 작은 길, 작은 피난처만을 찾지 말자. 비록 두발은 땅을 딛고있을망정 머리는 늘 푸르른 저 하늘높이! 설사 진탕에 빠지고 가시덤불 걷는다 해도, 눈바람 세차고 어둠의 길을 걷는다 해도 뜻은 늘 푸르른 저 하늘높이!

그렇다!

뜻은 늘 푸르른 저 하늘높이에!

이 길로 단군선인의 웅지가 깃들고 겨레의 정기가 깃든 불함산(백두산)으로 가자! 거기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거기 가서 무엇을 얻겠는지는 몰라도 가자, 거기로 가자, 하늘이 굽어볼게다.

문득 부루나가 멈추어섰다.

주몽은 고개를 들었다.

주위는 여전히 더위에 헐떡이고있다.

협부도 오이와 마리도 말우에서 끄떡끄떡 졸고있었다.

주몽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루나가 멈추어선것을 보면 무슨 까닭이 있다. 무슨 일일가?

어느새 숲은 끝나고 한켠으로 가을한 보리밭이 넓게 펼쳐졌는데 그 끝, 큰 떡갈나무밑에서 패랭이를 쓴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주몽은 부루나를 그 사람에게 돌렸다.

《말씀 좀 묻겠소이다. 여기가 대체 어디오이까?》

능달아래서 옷을 걷어붙이고 땀을 들이던 그 사람은 미처 대답을 못하고 주몽을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여기가 부여국지경이오이까?》

주몽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패랭이를 쓴 사람은 부스스 일어나며 대답하였다.

《부여는 저기 북쪽에 있소. 아마 하루길쯤 가야 된다나 봅디다. 가보지는 못했소만…》

《그럼 여기는 어디오이까?》

《여기야 구려국지경이지요.》

《그렇소이까, 고맙소이다!》

패랭이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주몽이 패랭이와 주고받는 소리에 깨여나 이쪽으로 다가오던 오이와 마리가 이곳이 구려국지경이라는 말에 날듯이 깃을 쳤다.

《주몽형, 들었소이까? 여기가 구려국이라던…》

오이가 주몽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는군…》

《그러니 부여의 지경이 아니란 말이오이까? 하, 이제는 됐소이다.》

세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시름이 가셔진 웃음이다.

《그런데 협부는 어디로 갔소이까?》 하고 오이가 물었다.

바라보니 저 앞에 협부가 방아깨비처럼 머리를 끄덕이며 가고있었다.

주몽이 협부를 소리쳐 부르려는데 마리가 《주몽형, 좀 계시오이다.》 하며 말렸다.

《내가 협부를 좀 혼쌀내겠소이다. 저 꼴 보시오이다. 어디서 척후라는게… 쳇!》

마리는 코살을 찡그려보이더니 협부를 쫓아갔다.

주몽과 오이는 천천히 그뒤를 따르며 마리가 어쩌는가 구경하였다.

마리는 먹이를 노리는 삵처럼 소리없이 협부에게 접근해갔다. 거의 미치게 되자 옷을 벗어 날개처럼 펼치더니 협부의 머리우를 덮쳐씌우며 꽉 그러안았다.

별안간 닥친 일에 협부는 펄쩍 놀라 꿈틀거렸다. 그러는걸 마리는 더욱 꽉 그러안는다. 둘은 서로 씩씩거리며 몸부림쳤다. 마침내 둘이 다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하, 하!》

뒤따르던 주몽과 오이가 재미있게 웃어댔다.

겨우 마리의 《덫》에서 벗어난 협부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끔뻑거렸다. 그 모양이 우스워 마리는 협부를 손가락질하며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협부는 마리를 힐끔 보고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주몽형, 깜빡 졸았소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오이까?》

협부가 어정쩡한 얼굴로 주몽에게 물었다.

주몽과 오이는 또다시 웃었다.

《협부, 여기는 이미 부여의 지경이 아니라네. 방금 한사람을 만나 물어보았는데 구려라고 하더구만. 그런데 자넨 척후라는게 그것도 모르고 끄떡끄떡 졸며 가고있으니…》 오이가 웃음을 참으며 말해주었다.

《그래? 하-》

협부는 껑충 뛰여오르며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아직도 키들거리는 마리를 발견하고는 《에익!》 하고 벼르며 그를 쫓기 시작하였다.

《마리! 서라! 내 오늘 너를…》

협부는 엄살떨며 달아나는 마리를 쫓아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그를 타고앉아 간지럼태우기 시작하였다.

《아, 협부, 졌다, 졌어. 그만… 그만해라!》

마리는 대굴대굴 굴면서 소리질렀다.

참말 오래간만에 맘을 놓고 웃고 떠들어댔다. 한참 웃고난 그들은 말에서 내려 능달을 찾아 퍼더버리고앉았다.

《주몽형, 한바탕 푹- 쉬여가사이다.》

손바닥으로 부채질하며 마리가 하는 소리였다.

주몽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잠시라도 쉬여야 한다. 친구들이 저렇듯 기뻐하는걸 보니 주몽의 마음도 싱그러워졌다.

쉬자, 그래야 힘도 생기고 좋은 생각도 떠오른다. 무가무휴는 병법에서도 꺼리는 변이 아닌가.

오이, 마리, 협부는 주몽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을 보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말우에서 벌써 며칠, 얼마나 곤했으랴, 주몽은 잠든 벗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기도 한숨 쉬려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탕개를 풀면 당장 백날이라도 쿨쿨 잘것 같았으나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주몽은 제멋대로 누워자는 벗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미더운 모습들인가.

홀어머니도 사랑하는 처녀도 안락한 생활과 눈부신 출세도 다 집어버리고 오로지 뜻을 따라 자기와 함께 나선 오이, 마리, 협부!

내가 과연 이들에게 참되고 훌륭한 길잡이가 될수 있을가? 어쨌든 단군선인의 웅지를 헤아려 충실하게 살자! 그러면 우리 가는 길 결코 헛되지는 않을것이다.

이제 실컷 잠자고난 다음 우리 불함산(백두산)으로 가자. 언제인가 례나루스승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불함산은 단군선인의 웅지가 깃들고 우리 겨레의 넋이 깃든 성산이라고, 거기 가서 우리 품은 뜻을 굳히고 성산의 정기를 얻자. 그래, 불함산으로!

앞날을 두고 골몰하던 주몽도 어느덧 잠이 들었다. 꿈같이 단 잠이 자기의 부드러운 깃으로 젊은이들을 품었다.

그들은 다음날까지 깨여나지 못했다.

그 무엇을 경계해서 보초를 세우지도 않고 말들도 고삐를 풀어놓은채, 밤에 모기와 벌레들에게 뜯기우는것도 아랑곳없이 잠을 잤다.

다음날 한낮무렵.

주몽은 새소리에 깨여났다. 눈을 뜨자 눈부신 해빛이 쏟아져들었다. 주몽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벗들은 아직 세상모르게 자고있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해묵은 락엽을 밟는 작은 짐승의 발자욱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들렸다. 주몽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진득진득한 기름기가 묻어나는듯 하였다. 사방을 둘러보고난 주몽은 물을 찾을가 하여 나섰다. 주변을 돌다보니 마침 산골짜기에서 물이 있음직해보이는 곳이 나졌다. 락엽이 축축히 젖어있고 바위에 물이끼가 성한것을 보니 분명 물줄기가 있을것 같았다. 아닐세라 락엽을 헤치니 샘줄기가 나섰다. 주몽은 두손으로 락엽을 넓게 밀어내고 웅뎅이를 팠다. 꿀륵꿀륵 하며 물이 솟구쳤다. 주몽이 내려다보는 사이에 서서히 웅뎅이의 물이 맑아졌다. 물이 흐르도록 골까지 내고나서 주몽은 처음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오이, 마리, 협부는 깨여나지 못하고있었다.

주몽이 흔들어대서야 그들은 깨여났다.

《자, 깨여들 나라구. 그러다가 아예 잠귀신들이 되고말겠어.》

오이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고 마리는 하품을 하는데 협부는 눈을 찌프리며 해자리를 가누었다.

《주몽형, 좀더 자겠소이다.》

마리가 다시 자리에 누우며 하는 소리였다.

《마리, 일어나라구. 자더라두 요기나 하고 자야지. 그저 잠이나 자면 오히려 맥이 풀려.

한바탕 사냥을 해서 원기를 돋구고 다시 쉬자구…》

그제야 마리는 일어섰다.

주몽은 그들에게 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한식경이 지나 실컷 물을 마시고 얼굴을 닦은 오이, 마리, 협부는 다시 주몽의 곁으로 모여왔다.

《어때 정신이 들어?》 하고 주몽이 묻자 오이는 활기찬 몸짓을 해보였다.

《막 날아오를듯 하오이다. 그놈의 잠이 뭔지…》

《그러게 사흘 잘 먹느니 하루 푹 자는게 낫다는 말도 있어.》

주몽이 웃는 낯으로 오이를 보며 말했다. 오이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주몽형, 여기가 구려땅이라면 앞으로 어쩔셈이오이까?》 하고 협부가 주몽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주몽은 벗들을 둘러보고나서 심중하게 속을 터놓았다.

《난 불함산으로 가려고 결심했네.》

오이와 마리의 눈빛이 번쩍이였다.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던 주몽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온것은 일시의 화를 피하자는것도 아니요, 구태여 부귀영화를 찾는것도 아닐진대 단군선인의 성지를 찾아보아 뜻을 굳혀야 할줄 아네. 차후의 일은 거기 가서 우리 찾아보세. 좋은 터를 만나면 좋은 생각이 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오이와 마리, 협부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주몽형 생각이 어련하시겠소이까, 그렇지 않아도 례나루스승께서 불함산에 대해서 말씀이 계시지 않았소이까. 단군선인을 따르고 겨레를 위하는 남아라면 한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고 말이오이다.》 하고 오이가 말했다.

《거기까지 가자면 길이 험할수 있네. 하지만 결심품고 떠나자구.》

《언제 뭐 우리가 좋은 길, 편한 길 가렸소이까? 주몽형 결심대로 우리도 따르겠소이다.》

《좋아, 우선 사냥을 해서 원기를 돋구자구.》

주몽은 말을 끝내고 오이와 협부의 어깨를 치며 일어났다.

네사람은 활기에 넘쳐 사냥차비를 서둘렀다. 활, 전통, 검들을 다시 살피고 안장끈도 죄여맸다.

차비를 끝내자 어느덧 해가 머리우에 머물렀다.

뒤다리를 껑충거리며 코투레질하던 네필 말은 숲속으로 뛰여들었다. 신바람난 말들은 제멋대로 덤불과 나무사이에 주둥이를 들여밀며 쿵쿵거렸다.

그들이 한창 숲속을 뒤지고있을 때였다. 가까운 숲속에서 무엇에 놀란 장끼 한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날아올랐다.

《꿩이다!》

주몽은 얼른 활을 그쪽으로 돌리고 뾰족화살을 메운 시위를 당겼다.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르던 꿩이 돌덩이처럼 떨어졌다.

《맞았다!》

《마수걸이 괜찮은걸…》

주몽이 꿩이 떨어진쪽으로 말을 몰았다. 벗들도 신바람을 내며 따랐다.

꿩은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화살이 꿩의 대가리아래 목을 꿰였다.

꿩을 맨 먼저 찾은 협부가 그것을 막 집어들 때였다.

숲속 저쪽에 웬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주몽이네 쪽으로 뛰여왔다. 앞선 사람은 사치한 비단옷을 입었고 그뒤로는 해진 베옷을 입은 노예차림의 사람들이였다.

《야, 이놈들아!》

앞선 사람이 대뜸 야료다.

《도적놈들 같으니, 그 꿩을 놓고 냉큼 물러서지 못할가.》

꿩을 집어들고있던 협부가 소리치는 작자를 주시하다가 흥- 코바람을 불며 주몽을 건너보았다.

《주몽형! 저 사람들이 대체 왜 그러오이까?》

《거 입버릇 되게 사나운걸…》

오이가 두손을 허리에 얹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주몽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자세히 주시하였다. 차림새를 보면 흔한 사냥군이 아닌데 이들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가. 그리고 오이의 말마따나 입버릇이 거센걸 보면 호령질에 찌들은 사람인데… 모를 일이다. 하여튼 두고보자.

마침내 협부의 곁에 다달은 그 사람은 《그 꿩을 당장 내놓아.》 하고 소리쳤다.

《여보시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요?》

협부가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늘어지게 대꾸했다.

그러자 상대는 주춤했다.

《어, 이놈 봐라! 내놓으라면 곱게 내놓을게지 무슨 사설이야?》

《허, 거참, 당신 누구요?》

《야, 이놈. 내가 누구건 잔말 말고 그 꿩 내놓아!》

《이 꿩은 우리가 잡은것인데 왜 당신에게 내놓겠소?》

《너희가 잡았다고? 하 야. 참, 날벼락 맞겠군. 이 꿩은 우리 도리대감께서 잡은거란 말이야. 그러니 얼른 내놓아!》

비단옷이 무작정 꿩을 채려는걸 보다못해 오이가 한발 나서며 그를 떼여놓았다.

《이 사람, 어디서 자다 깨났을가?》

오이가 가볍게 밀어놓느라고 한데도 비단옷은 서너발자욱 뒤로 비척거렸다. 그는 겨우 몸을 다잡으며 올롱해진 눈으로 오이를 쏘아보더니 두손을 들어 비단옷자락을 내리웠다.

《야, 이놈들, 사람을 몰라보는구나.》

당장 덤벼들 차비다. 하지만 어쩐지 범아재비가 가는 팔 벌리고 수레를 막아서는 형상이여서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좀 가만 있소.》

주몽이 손을 들었다.

《보아하니 그쪽에서는 뭔가 잘못 아시는 모양인데. 이 꿩은 내가 쏘아잡은거요.》

오이에게 덤벼들려던 비단옷이 주몽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뭐? 으응, 그러구보니 네가 패당의 두목 같은데. 똑똑히 알아, 이 꿩은 우리가 튀겨놓은걸 도리대감이 손수 쏘아잡았단 말이야, 알겠어?》

《도리대감인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꿩이 맞은 화살을 보면 알게 아니겠소?》

그러자 비단옷은 재빨리 꿩에게 눈을 주었다.

이때라듯 협부가 꿩에 꽂혔던 화살을 잡아 뽑았다. 그것은 주몽의 전통에 꽂힌것과 꼭같은 뾰족화살이였다.

비단옷은 눈길을 어룽이며 입속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협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젠 알겠소이까?》

비단옷은 힐끔 협부를 보고나서

《맞히긴 누가 맞혔는지 모르겠지만 이 꿩은 분명 우리거요!》

《뭐요? 허, 이 어른이…》

《왜냐하면 이 지경은 구려의 지경이고 우리 도리대감으로 말하면 구려국의 황부 연노부의 실권자이기때문에 결국 이 꿩은 물론 이 땅의 모든것이 다 도리대감의것이라 그 말이야, 그러니 어서 꿩을 내놓아!》

《이젠 막 억지를 쓰는군. 하늘을 나는 꿩이 구려의것인지 아니면 부여의것인지 어찌 안다고 그러시오?》

《뭐가 어째? 너 이놈, 아까부터 말버릇이 곱지 못한걸 참았다. 한번 본때를 봐야 알겠냐? 어디서 굴러먹던 놈팽이들이람. 이놈들 대체 어느 부 놈들이야? 계루부놈들이야 엉?》

《우린 부여사람들이요.》

《부여사람이라고? 옳지. 그러구보니 이국놈들이로구나.》

비단옷은 세길 네길 뛰였다.

주몽은 이 비단옷과 아웅다웅하는게 어처구니없었다. 적당히 얼려서 떼여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주몽은 《우리는 사정이 있어 불함산으로 가던 길이요. 그러니 설혹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어른이 너그럽게 량해하시오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비단옷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어디 가든 네놈들이 우리 구려지경을 범했은즉 가만둘수 없다. 얘들아, 이놈들을 묶어라.》

《가만, 우리가 구려국의 지경을 범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잘못이요?》

《왜 잘못이 없어? 나라의 지경을 넘는 놈들은 모두 엄살하는줄 몰랐더냐?》

《당치않은 소리! 이 땅도 옛 단군선인의 땅, 부여도 그 지경이였은즉 어른이 어찌 같은 겨레가 서로 오가는걸 죄책할수 있겠소이까?》

《나는 그따위 몰라, 그런 넉두리는 뒤간에 가서나 해라.》

《보아하니 당신은 아무래도 상대가 되지 않는구만. 우릴 어서 상전에게 안내나 하오.》

주몽이 잘라 말했다.

비단옷은 잠시 벙해있다가 다시 시까슬렀다.

《좋아, 어디 우리 도리대감님앞에 가 시비곡절을 따져봐!》

비단옷이 돌아섰다.

주몽이 그뒤를 따르려는데 오이가 막아섰다.

《주몽형, 저깟 놈, 베버리고말겠소이다.》

《오이, 모기 한마리에 검을 뽑지 말게. 어지럽히겠네.》

잔뜩 부풀었던 오이는 칼집에서 손을 떼며 미간을 찌프렸다. 주몽일행이 비단옷의 뒤를 따라 숲속을 꿰질러 얼마쯤 가니 숲속 그늘진 곳에는 뜻밖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한창 주연을 준비하고있었다. 고기를 굽는 냄새와 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단옷이 차일친 곳으로 다가가 상전인듯 한 사람에게 뭐라고 수군거렸다. 상전도 역시 비단옷을 입었는데 누런빛이 도는것이 자기 부하의것보다 질 좋은것 같았다. 그는 부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몽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흔살쯤 되는 사람이였다.

주몽은 그 상전인듯 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목이 성큼하게 길고 입이 크게 째진것이 특징이였다.

그는 자기 부하와는 달리 주몽을 훑어보고나서 그 큰 입에 웃음을 담았다.

주몽은 때가 때인지라 무릎을 꿇어 인사를 차렸다.

《지나가던 과객들이 문안드리오이다.》

상전은 성큼성큼 주몽에게 다가왔다.

《아, 협객들이구려. 그대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여 반갑소. 내 나라지경에서 부여의 협객들을 만난것도 인연이랄가?》

내 나라지경을 운운하는 바람에 주몽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럼, 임금님이시오이까?》

《허, 임금은 아니라도 그 맞잡이는 된다고 할수 있지. 나는 뜻을 품고 인걸들을 찾는 사람이라 그대들과 같은 사람들을 환영하오. 나는 구려 연노부대감 도리라고 부르오.》

《주몽이라 하오이다.》

《부여사람이라지?》

《그렇소이다.》

《내 부하와 언짢은 일이 있은 모양이던데 잊어버리오. 원래 속이 좁은 사람이지만 충실한 사람이요. 꿩 한마리가 뭐라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소이다.》

《허허, 나는 그대들을 보는 순간에 그대들이 여느 길손들이 아니라는걸 알아보았소.》

《과찬의 말씀이오이다. 우리는 그저 산수나 즐기는걸 락으로 아는 사람들이오이다.》

도리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주몽의 금새를 다 안다는 표정이다.

주몽도 이 사람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관상을 보면 이런 사람들은 인내심이 강하여 간난을 이겨내며 자기 목적을 이루군 한다. 단 잔인, 탐욕, 시기심이 강한것이 약점이겠지만.

주몽이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도리가 주몽의 낯을 건너보며 잔웃음을 지었다.

《그대는 아마 내가 어떤 사람일가? 하고 점쳐보는게 아니요?》

《민감하시오이다.》

《허허, 나는 중한 일이 있어 행인국으로 가던 길이요. 여긴 구려의 계루부지경이지만 난 계루부의 신세를 별로 지고싶지 않아 숲속에서 잠간 머물러가는 길이요!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대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들고싶은데…》

《고맙소이다. 허락하신다면 저희들은 대감의 청을 물릴가 하오이다.》

《섭섭하군, 하지만 억지를 부릴수는 없고… 하여튼 나도 지금 꼭 볼일이 있어 가는 길이라 그대들을 억지로 붙잡을 생각은 없소. 하지만 후날에라도 나를 찾아온다면 기꺼이 맞아줄테요. 어떻소?》

《뜻이 같으면 사내들은 만난다고 하오이다.》

《그렇지. 아, 그대들과 그저 헤여지기 아쉬운걸…》 하며 도리는 진정 섭섭한감을 숨기지 못했다.

도리는 주몽과 작별하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있었다.

주몽은 인차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한참 가서 오이가 어딘가 못마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몽형, 어째서 굴러온 복을 차버리시오이까? 까짓거…》

주몽은 말을 멈춰세웠다. 그는 눈을 내리깐 오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 서있었다.

주몽도 딱히 모를 일이다. 도리라는 그 대감의 청을 물리친것이 무슨 까닭인지 단언할수 없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느낌이 든것만은 사실이였다.

주몽의 표정을 살피던 마리가 혼자소리로 말하였다.

《남의 잔치상에는 앉지 않는게 좋아.》

주몽은 마리의 말을 뒤로 들으며 숲속으로 자꾸 말을 몰아갔다.

우린 우리대로 잔치를 차리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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