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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3(2014)년 12월 1일

필란의 절개

 

신라왕궁의 악공인 만덕은 궁궐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더딘것만 같았고 가슴에 높뛰는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집안의 복이 되고 딸에게는 행운이 되는 소식을 안고오기때문이였다. 가야금을 만들어 온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스승인 우륵이 자기 딸을 며느리로 삼겠다니 이아니 경사이겠는가.

우륵의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잘난데다 총명하여 학문에 뛰여나므로 궁궐의 관리들이 은근히 침을 흘리는 신랑감이였다.

그런데 자기와 같이 보잘것없는 악공의 딸에게 장가를 들이겠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였다. 얼마전에 자기 집에 우연히 들리였다가 숙성한 딸을 보고 인물맵시와 례절에 탄복한 우륵이 오늘 정식으로 만덕에게 청혼했던것이다. 만덕은 과분한 청혼을 놓칠가 두려워 딸과 의논하여 성례를 곧 치를 결심이였다.

만덕은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딸을 불러 우륵의 집에서 청혼해온 사연을 털어놓았다.

《자, 얼마나 좋은 신랑감이냐? 나는 곧 성례를 치르려 하는데 네 생각도 다른게 없겠지?》

얼굴을 붉히면서 기뻐할줄 알았던 딸 필란은 뜻밖에 수심에 잠기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만덕이 대답을 독촉해서야 필란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은 늘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도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오늘 어찌 도리를 어기시고 저를 다른데로 시집보내려 하시나이까?》

《도리라니?》

만덕은 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아버님은 이미 제가 태여나는 날에 저의 혼처를 정해주시고 제가 자랄 때에는 옛말처럼 들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법랑은 내 랑군이라고요.》

《뭐라구? 법랑이…》

만덕은 말끝을 흐리였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우륵이 가야국에서 오자 그의 제자로 뽑히운 만덕과 함께 법지라는 동갑이 있었는데 음악을 배우는 기간에 장가도 같이 들고 집도 나란히 지어 살아온데다 자식도 같은 날에 보게 되였다. 만덕은 딸을 보았으나 법지는 아들을 보았다. 첫 자식을 본 기쁨에 들떠있던 그들은 같은 날 벗들의 집에서 아들딸이 태여난것이 우연치 않으니 분명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 아닌가 하면서 혼인을 맺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애들이 자랄 때 만덕의 딸은 법지의 며느리라, 법지의 아들은 만덕의 사위라 부르면서 지내왔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법지의 내외가 병을 앓아 일찍 세상을 떠났고 걸음마를 겨우 떼던 아들은 이웃마을에 노비로 혼자 사는 녀인이 데려다 키우게 되였다. 그런데 법지의 아들은 여라문살 났을 때에 시름시름 앓다가 눈이 멀었고 뒤이어 말도 못하게 되였다.

십여년세월이 흘러 법지의 아들을 자기의 사위라고 부르던것이 만덕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더구나 앞을 못보는데다 말까지 못하는 소경에 벙어리를 자기 사위로 삼으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가져보지 못했던 만덕이였다. 그런것을 오늘 새삼스레 딸이 말하니 만덕이로서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얘야, 그건 옛날에 친구끼리 롱으로 한 말이였다. 설사 롱이 아니였다 한들 내가 어찌 너에게 그런 소경에 벙어리를 신랑감으로 정해주겠느냐. 그런 말은 아예 입밖에 내지도 말아라.》

만덕은 이렇게 딸애를 달래였다. 그러나 필란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아버님의 말을 따를수 없나이다. 우륵의 아드님은 인물도 잘나고 재간도 많으며 또한 그 집은 만인이 우러러본다 하시였으니 그가 제 아니고 다른 처녀를 구할수 없겠나이까. 그러나 법랑은 앞못보고 말도 못하는 병신이오니 만약 저까지 그를 버린다면 그가 어찌 제집을 이루고 살수 있겠나이까. 저는 절대로 그가 홀로 세상을 마치게 할수 없나이다.》

만덕은 딸이 자기의 뜻을 따르지 않고 도고한데 성이 났다.

《그래, 너는 그 병신만 생각하고 이 아버지는 생각하지 않느냐? 벗의 도리는 도리지만 아버지와 딸의 도리도 있지 않느냐? 그래 그런 병신에게 곱게 기른 딸을 주는 이 아버지의 아픈 마음은 생각지도 않느냐? 그리구 이것은 스승과 결말을 맺은 혼사이니 달리할수 없다. 달리할수 없어. 래일 당장 선보이러 신랑을 데려오겠으니 옷손질을 하고 몸단장이나 잘하여라.》

만덕은 이렇게 딸을 욱박질러 제방으로 돌려보내였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만덕은 궁궐에 나가기에 앞서 딸이 옷손질과 몸치장을 어떻게 하고있는가를 보려고 그의 방문을 열었다.

순간 만덕은 놀랐다.

딸의 삼단 같던 머리태는 간데없고 앵두같이 붉고 예쁜 얼굴에는 얽은것처럼 검은 점들이 가득 박혀있었다. 필란은 간밤에 머리를 깎고 얼굴을 바늘로 찔러 먹물을 먹였던것이다.

《이게 무슨짓이냐?》

만덕은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그러나 필란은 태연한 기색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유순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님, 걱정마십시오. 아버님은 스승이 정한 혼사라 물리기 어려워하셨는데 인젠 우리가 거절하지 않아도 저의 이 모양을 보면 그들이 저절로 물러날것이 아니오이까?》

《뭐라구? 아이쿠》

이런 일을 당하고 대궐에 나간 만덕의 얼굴이 범상할리 없었다.

우륵은 만덕의 얼굴이 병든것처럼 하얗게 질려있고 기분도 갑자기 침울해진것이 이상하여 물었다.

《어디 몸이 몹시 편치 않으시오. 아니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만덕은 하는수없이 자기 딸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우륵이 만덕에게 심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를번 했소. 친우의 도리를 저버릴번 한것도 큰 일이였지만 우린 음악가로서 더 좋은 노래를 지을수 없고 더 훌륭하게 가야금을 탈수도 없게 될번 했소. 친구의 도리를 어긴 우리들이 노래를 지은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으며 남의 행복을 앗은 우리들이 가야금을 탄들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낼수 있었겠소?》

우륵은 곧 옛 제자인 법지의 아들과 만덕의 딸의 혼례를 치르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필란은 만사람의 축복속에 소경이며 벙어리인 법지의 아들과 혼례를 치렀다.

소경이며 벙어리인 남편을 맞은 필란은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약을 지어다 그에게 달여먹이였고 좋다는 약초를 캐기 위하여 산발을 넘나들었다.

필란의 지극한 정성으로 하여 7년만에 남편은 앞을 보게 되였으며 말도 하게 되였다. 그와 동시에 필란의 얼굴에 박혔던 먹물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필란이 남편의 약을 달여서는 한술씩 떠먹어보고 온도를 낮추고 농도를 헤아리는 과정에 약물이 몸에 배여 효험을 나타냈던것이다.

앞을 보고 말도 하게 되자 너무도 기뻐 어쩔줄 모르게 된 그의 남편은 안해의 손을 붙잡고 궁궐로 찾아가 만덕을 만났다.

《아버님, 정말 고맙습니다.》

법랑은 땅에 꿇어앉아 만덕에게 큰절을 하며 눈물을 흘리였다.

만덕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사위를 붙잡고 어쩔줄 몰라했다.

《아니 이게 꿈이냐 생시이냐? 네가 눈을 뜨고 말도 하게 되다니…》

《이것은 다 아버님께서 도리를 지켜 저를 돌보아준 은혜이옵니다.》

《아니다. 이것이 어찌 인력으로 바랄 일이냐? 하늘이, 하늘이 굽어살피신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하지 않으셨나이까? 바로 사람의 도리를 굳게 지키시는 아버님의 그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키며 인력으로 바랄수 없는 이 기적이 제 몸에 베풀어진것이옵니다.》

《아, 그랬을가?》

하늘을 우러르는 만덕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였다. 기쁨과 감격, 자책과 행복의 눈물이였다.

이때 우륵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내 평생 내 가야금이 내는 소리보다 아름다운것이 없다고 생각했더니 도리를 지켜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노래보다 아름답구나. 내 오늘 노래가 아름다와야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와지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와야 노래가 또한 아름다와짐을 다시 느끼는바이다.》하고는 다소곳이 서있는 필란의 어깨를 오래도록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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