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10월 31일
 

민족의 자랑인 고려청자발전에 크게 기여한 재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려청자기는 색과 문양, 모양이 특출하여 예로부터 세상에 명성을 떨쳤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물처럼 여겨왔습니다.》

우리 공화국에는 한생을 고스란히 고려청자발전에 바쳐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만방에 빛내인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김일성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우치선선생이다.

 

 

망국노의 설음안고 몸부림치던 우치선선생은 20살 나던 해에 일본인기업주의 짐군이 되여 일본에 가게 되였다.

나고야의 박물관에 수많이 진렬된 고려청자기를 본 그는 기어이 청자기술을 터득하여 조선사람의 얼을 찾을 결심을 품게 되였다.

그는 여러 도자기공장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속에서도 자기의 뜻을 굽힘이 없이 청자기술을 연구하였고 1930년대 중엽에는 전국도예전에도 입상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는 인간의리조차도 지켜낼수가 없었다.

해방과 함께 우치선선생은 자기의 희망을 꽃피울수 있었다. 남포도자기공장 공장장으로 있으면서 일본놈들이 마사놓고 달아난 공장을 복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일용자기들을 구워내면서 본격적인 려청자기연구에 달라붙은 그는 선교도자기공장에서 일하면서 고려청자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켰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그는 끝내 형태가 우아하고 문양이 아름다운 고려자기, 청자상감기법을 완성하여 민족전통과 개성을 살린 《호로형운학상감장식주전자》, 《인장련속무늬상감장식꽃병 비롯한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수많이 출품하여 세상을 놀래웠다.

우치선선생은 1980년대 초엽부터는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 창작가로 일하면서 많은 청자기들을 국가미술전과 세계각국의 전람회들에 출품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창작적특기는 도장련속무늬를 기본으로 하고 현대적미감에 맞게 힘차면서도 정서가 풍기는 그림들을 배합하여 형태와 무늬, 색갈이 잘 조화되고 또한 은근하고 더없이 고상하고 아름다와 신비스러운 감과 황홀감에 심취되게 하는것이다.

언제인가 사람들이 그에게 70여년의 창작인생행로에서 이룩한 눈부신 성과의 비결에 대하여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도자기를 하자면 우선 미술을 알아야 하고 흙을 알아야 하며 불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다 합친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창작의 자양분을 안겨주시고 세계의 단상에 올려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을 심장깊이 새기고 창작실천에 구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우치선선생의 좌우명이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우치선선생은 드디여 인생의 좌표를 정하고 창작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김일성계관인, 인민예술가, 고려청자의 대가로 되였으며 그의 자식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청자기를 전문으로 하는 창작가들로 자라날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그의 작품을 보아주시고 우치선동무는 고려청자발전에 크게 기여한 재사라는 최상의 평가도 해주시고 그가 나이 일흔이 되여 출근하는데 불편할것을 념려하시여 은정넘친 사랑을 안겨주시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였다.

우치선선생의 인생행로는 겨레에게 위인을 모셔야 선조들이 창조한 민족문화유산도 대를 이어 계승되고 발전풍부화된다는 진리를 깨우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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