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8일
 

《을미사변》​

 

《을미사변》은 1895년 8월에 일본침략자들이 조선왕궁을 습격하고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이다.

청일전쟁후 조선에서 자본주의렬강들의 세력권쟁탈전은 매우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었다. 이러한 때 조선봉건왕조안의 사대주의적인 민가통치집단은 짜리로씨야에 의존하는것이 저들의 안전과 향락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타산한데로부터 친로적경향으로 나갔다. 이렇게 되자 우리 나라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획책하던 일본침략자들은 조선침략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민가통치집단의 우두머리인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친로세력을 제거한 다음 친일세력의 강화를 꾀하였다. 이렇게 되여 명성황후에 대한 살해가 계획되고 감행되였다.

일본정부는 1895년 7월에 포악하고 흉악한 군벌출신인 륙군중장 미우라를 서울주재 일본공사로 파견하여 이 음모를 꾸미게 하였다. 일본정부의 비밀훈령을 받은 미우라는 이해 8월 15일 일본공사관에서 일본살인악당들과 명성황후를 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8월 19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사이에 미우라의 지휘밑에 일본수비대 후비보병 18대대, 일본외무성 경찰대, 일본민간인깡패들과 특무 등 일본살인악당들 수백명이 불의에 왕궁을 습격하여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을 쏘아죽이고 왕비를 내놓으라고 하면서 국왕을 협박하고 감금하였다. 그리고 명성황후의 머리태를 잡아끌어 대청마루에 내다가 큰 칼로 란도질하여 무참히 살해하였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일본악당들은 죽은 명성황후를 장작더미우에 놓고 석유를 뿌려 불태워버리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명성황후에 대한 살해는 당시 왕권에 의하여 대표되던 조선봉건왕조의 국가주권에 대한 란폭한 유린이였으며 세계력사상 류례없는 잔인한 학살만행이였다.

이 사건은 삽시에 내외여론을 끓어번지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 일본침략자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더욱더 높아졌다. 이렇게 되자 일본정부는 미우라이하 40여명을 본국에 끌어가 형식상 재판놀음을 벌리다가 《증거불명》이라는 구실밑에 모두 무죄석방하였다.

《을미사변》은 강도 일제야말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들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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