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6월 12일
 

독특하고 우수한 차문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으며 우리 나라에는 우리 민족의 슬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자기의 우수한 음식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여왔다. 그중에는 유구함과 독특함으로 하여 자랑높은 차문화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삼국시기부터 차나무재배를 장려하면서 차를 즐겨마시였다. 처음에는 차가 주로 부유계층들과 불교숭려들의 독점물이였으나 점차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차나무가 재배되기 시작한것은 7세기부터였는데 고려시기에 와서 차문화가 발전하였다.

차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고려에는 차잎생산과 조리, 판매 등 차와 관련한 행정실무를 보는 《다방》과 같은 국가적인 관청까지 세워지게 되였다.

《다방》은 국가적인 약방도 겸하였는데 그것은 차잎이 각성, 소독, 진정 등의 약효성분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약재로도 많이 쓰이였기때문이다.

당시 왕궁에서는 《다례》라고 하는 차마시는 행사도 자주 진행되였다.

《고려사》를 비롯한 력사기록들에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되여있다.

고려사람들의 음식문화에서 차마시기는 빼놓을수 없는 한 측면을 차지하고있었다. 차는 국가의례행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음료로 취급되였다. 이웃나라들에서도 우리 나라 특산물의 하나로서 차를 꼽았다.

국가의 고위관리들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봉건정부에서 내려보낸 물자에는 뇌원차, 대차 등 각종 차가 들어있었다. 록차의 일종인 뇌원차의 이름은 《머리를 거뜬하게 하는 차》라는 뜻이다.

고려사람들은 차잔과 차끓이는 도구들도 발전시키였다.

차잔으로서는 고려청자기의 특성을 잘 살린 비색자기차잔을 많이 리용하였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가진 고려차를 비색자기차잔에 부어마시는 멋은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다고 한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차문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발전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실록》에는 우로는 왕궁과 아래로는 시골에 이르기까지 차마시기가 계속 이어져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고려시기때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행사때에는 왕궁에서 《다례》를 진행하군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약효성분이 많은 인삼차, 결명자차, 보리차, 생강차들을 즐겨마시였다.

이런 차들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로동생활과정에 터득한 자연생태와 식물들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우수한 건강음료들이였다.

조선봉건왕조후기에 나온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리 선조들이 즐겨마신 차로서 매화차, 국화차, 포도차, 생강굴차, 당귀차, 협두차(콩차), 보리차, 누룩차, 오미자차, 구기자차, 감나무잎차, 대추차, 인삼차 등 여러가지 이름의 차가 기록되여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보급된 차들가운데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다섯가지 과일로 만든 오파차와 결명자차, 차나무의 싹으로 만든 작설차 등을 최고급의 차로 일러주었는데 이러한 차들은 이웃나라들에서는 보기 힘든것들이였다.

우리 나라의 차들은 대부분이 심장, 위를 든든하게 하여주는 약효성분들을 많이 가지고있기때문에 그 인기가 대단히 높다.

이처럼 차문화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놓고서도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슬기와 지혜를 엿볼수 있다.

오늘 인민들에게 보다 문명하고 유족한 생활을 마련해주려는 조선로동당의 현명한 령도로 우리의 차문화는 더욱 발전하고있다.


본사기자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