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19일
 

4. 19인민봉기​

 

4. 19인민봉기(4월인민봉기)는 주체49(1960)년 4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을 반대하며 자유와 해방, 새 정치와 새 생활을 요구하여 일으킨 대중적인 반미반파쑈항쟁이다.

4월인민봉기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오래동안 쌓이고쌓였던 남조선인민들의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으며 남조선전역에서 수백만명에 이르는 광범한 군중이 참가한 대중적인 반미항쟁이였다.

4월인민봉기의 도화선으로 된것은 1960년 3월 15일 매국역적 리승만역도가 장기집권을 꾀하면서 《대통령》선거를 금권과 관권을 총발동하여 사상 류례없는 부정협잡선거로 치른것이다.

사건을 발단으로 하여 《선거》당일인 3월 15일 경상남도 마산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시내 로동자, 시민들과 함께 《협잡〈선거〉 물리치자》, 《이번 〈선거〉는 무효다. 개표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웨치면서 시위투쟁에 떨쳐나섰다. 괴뢰경찰에 의하여 시위군중 10명이 사망되고 70여명이 부상당하자 시위투쟁은 곧 봉기로 넘어갔으며 그 투쟁대오에는 2만 3 000여명의 군중이 망라되였다. 마산의 학생들과 시민들에 의하여 시작된 반《정부》투쟁은 남조선전역으로 퍼져가 서울, 대구, 부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련이어 벌어졌다. 인민들의 투쟁이 점차 확대되고 고조되여가는 가운데 마산에서는 새로운 대중적항쟁이 일어났다.

제2차 마산봉기의 발단으로 된것은 3월 시위투쟁당시 마산앞바다에서 리승만괴뢰도당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김주렬학생의 시체가 4월 11일에 발견된것이였다.

4월 15일까지 계속된 2차봉기에는 청년학생들을 비롯하여 부두로동자와 부녀자들 지어는 구두닦기소년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광범한 시민들이 참가하였으며 그 수는 3만 5 000여명에 달하였다. 마산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벌린 영웅적투쟁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인민적항쟁의 신호로, 서곡으로, 그 준비로 되였다. 마산에서 시작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그 중심이 서울로 옮겨지게 됨으로써 더욱 급속히 확대발전하게 되였다. 서울에서의 대중적진출은 4월 18일 4 500여명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가두시위로부터 시작되였다. 서울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대중적투쟁은 급격히 확대되였다. 4월 19일 서울의 대학생들을 비롯한 봉기자들은 《썩은 정치 물러가라!》, 《리승만〈정권〉 타도하라!》 등의 구호를 들고 괴뢰군경들을 물리치면서 저주로운 반동의 소굴인 괴뢰중앙청으로 밀려갔으며 악명높은 《반공회관》과 《서울신문사》, 《자유당》본부를 불살라버렸다. 이와 함께 봉기군중들은 미제의 식민지략탈기관인 남조선주재 미국경제조정관실, 미국경제협조처 사무실을 돌로 까부셨다. 봉기는 서울, 부산, 인천, 광주, 수원, 진주, 대전, 충주 등 남조선의 거의 모든 도시와 지방들에서 일어났으며 도처에서 괴뢰통치기구를 짓부셔버림으로써 원쑤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인민봉기가 남조선전역을 휩쓸게 되자 이에 당황한 미제와 그의 앞잡이들은 괴뢰정부의 구성을 부분적으로 개조하는 방법으로 인민들의 투쟁을 무마하려고 시도하는 한편 무력을 동원하여 봉기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어떠한 류혈적폭압도 남조선인민들의 영웅적투쟁을 막을수 없었다. 4월 26일 항쟁에 궐기했던 남조선인민들은 피어린 투쟁을 통하여 마침내 미제의 오랜 앞잡이 리승만괴뢰정권을 무너뜨렸다. 4월인민봉기의 전기간에 남조선 전지역에서 523회의 투쟁이 벌어졌으며 여기에는 각계각층의 수백만 군중이 참가하였다.

4월인민봉기는 고귀한 경험과 교훈을 남기였다. 그것은 남조선의 광범한 인민대중에게 단결하여 억압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선다면 어떠한 원쑤의 아성도 능히 짓부실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4월인민봉기는 로동자, 농민이 광범히 참가하지 못하였기때문에 조직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가 미제의 또다른 친미사대앞잡이들에게 빼앗겨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지 못하였다.

4월인민봉기는 미국의 지배와 간섭이 있는 한 남조선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다시한번 새겨주었다. 또한 남조선인민들이 완전한 민주주의적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며 인민들의 투쟁은 반드시 혁명적당의 령도밑에 진행되여야 한다는것,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미투쟁의 구호를 높이 들어야 한다는것을 보여주었다.

4월인민봉기는 미제가 총칼로 만들어놓은 리승만괴뢰정권을 뒤집어엎고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그 식민지통치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또한 남조선의 자주, 민주화운동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놓았다. 봉기를 통하여 각계각층 인민들의 정치적각성은 매우 높아졌으며 이를 계기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의 예봉은 점차 미제국주의에 돌려지기 시작하였다.

4월인민봉기후 남조선인민들의 민주화투쟁은 보다 높은 단계에로 심화발전되였으며 특히 외세를 배격하고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애국적투쟁으로 발전하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관련물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