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월 16일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건축술을 보여주는 보통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건축술은 조선민족의 커다란 자랑입니다.》

공화국의 수도 평양에 있는 보통문은 평양성 중성의 서문이였다.



보통문은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수도성인 평양성을 쌓을 때 함께 세웠다. 지금의 건물은 여러차례 보수개건되여오다가 1473년에 고쳐지은것이다.

보통문은 평양성 서북쪽방향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고구려시기부터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시되였다.

보통문은 웅장하면서도 균형이 잘 째인 아름다운 건물로서 예로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보통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축대와 그우에 세운 2층문루로 이루어졌다.

축대복판에는 무지개문길을 내고 문길 앞쪽에는 앞뒤에 쇠쪼각들을 줄지어 입힌 튼튼한 널문을 달았다.

무지개문길은 우리 선조들의 높은 돌쌓기기술을 잘 보여준다.

문루는 정면 3간, 측면 3간이며 배부른 기둥들이 두공을 이고 그우에 2층의 날아갈듯 한 합각지붕을 떠받들고있다. 바깥기둥들은 1층의 지붕에 이어지고 집안의 4개의 기둥은 1층에서 2층까지 관통하여 세웠다.

문루의 2층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우지 않고 1층 추녀의 뒤초리가 기둥을 대신하게 하였으며 마루도리밑에는 아름다운 화반대공을 세우고 그 좌우에 활개를 받쳐 집의 억세기를 높였다.

보통문은 다른 성문들에 비하여 전체 높이가 조금 낮고 또 1층면적에 비하여 2층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게 되여있어 장중하고 안정한 느낌을 준다.

보통문에는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위하여 싸운 슬기로운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우리 인민들과 군인들은 보통문으로 돌입하여 성안에 일시 도사리고있던 왜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폭격으로 보통문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였을 때 평양시민들은 희생적으로 불을 끄고 보통문을 구해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들의 고상한 사상감정의 발현이다.

오랜 력사적기간 전해내려오는 보통문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 국보로 보존관리되고있으며 평양성연구에서 가치있는 중요한 건축물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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