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주체108(2019)년 8월 19일

평양시간

주체106(2017)년 7월 20일
 

룡악산의 세그루 은행나무

 

평양의 금강산으로 불리우는 룡악산 법운암 앞뜰에는 세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세개의 원줄기가 마치도 한뿌리에서 솟은것처럼 보이는 이 은행나무들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왜적의 침입으로 팔도강산이 전란에 잠겼던 그때 이곳 룡악산 법운암으로 서산(묘향산)의 보현사 중인 휴정(서산대사)의 격문이 날아들었다.

당시 72살 고령의 몸으로 손에 칼을 잡고 전국의 중들을 왜적격멸에로 불러일으킨 서산대사 휴정의 격문은 이곳 법운암 중들의 마음에도 애국수호의 피를 끓이게 하였다.

그가운데서도 남달리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감이 높았던 중들인 영정과 심근, 우교는 남먼저 왜적격멸의 성전에 궐기해나섰다.

이튿날 절을 떠나기에 앞서 불상앞에 룡악산샘물을 정히 떠놓고나서 《태를 묻은 소중한 이 땅을 짓밟고 무고한 중생들을 마구 살륙하는 저 섬오랑캐들의 간악무도에 의분을 참을길 없어 살생을 금하라는 불가의 계률을 어기고 목탁과 념주를 쥐였던 이 손에 창칼을 잡고 나섰으니 부처님은 우리를 너그러이 살펴주옵소서. 기어이 저 아수라 패륜악마들을 한두름에 꿰여서 지옥의 기름가마에 처넣고 돌아오겠나이다.》라고 두손모아 절하고난 이들은 이어서 절뜨락밑 샘물터앞 공지에 은행씨앗 한알씩을 정히 심었다.

설혹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태를 묻은 이 땅을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긴 저희들의 마음을 정든 룡악산에, 천여년을 산다는 은행나무에 고이 간직해두고싶어서였다.

이들은 얼마후 평양성탈환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승병부대 대오의 맨앞장에서 처음에는 영정이, 다음에는 심근, 마지막으로 우교가 부대지휘기를 끝끝내 을밀봉마루에 꽂고서야 눈을 감은 소식이 룡악산에 전해왔다

놀라웁게도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부터 세그루의 은행나무들은 자라면서 서로 가까이로 조금씩 죄여들더니 얼마안가서 아예 한뿌리에서 돋은 나무들처럼 합쳐지고말았다.

오늘도 이 고장사람들은 이름과 나이, 태여난 곳도, 생김새도 서로 다른 그들이였지만 나라를 지켜싸운 애국의 마음은 하나이기에 이들의 넋이 깃든 나무도 하나로 뭉쳐 자라게 된것이라고 말하고있다.

룡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이 세그루 은행나무앞에 가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예나 지금이나 나서자란 이 땅을 지키는 싸움에서는 누구나 한마음, 한모습이여야 한다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고 말한다.

본사기자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