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4월 21일
 

위대한 혁명관을 새겨주신 고결한 한생

 

오늘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어머님께서 탄생하신 뜻깊은 날이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1892년 4월 21일 평안남도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오늘의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1동)의 가난한 농가에서 탄생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흘러 어느덧 125돐의 년륜을 아로새기는 어머님의 탄생일을 맞이하는 이 시각 온 겨레는 우리 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을 조선의 태양, 인류의 태양으로 받들어올리시고 력사의 험난한 풍파를 헤치시며 뚜렷한 자욱을 남기신 강반석어머님의 한생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본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니의 온 생애는 그대로 나의 가슴에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도 같은 생애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비범한 천품을 타고나신 아드님의 성장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이께서 유년시절부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의 마음을 지니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아침저녁 만경봉과 순화강에 아드님을 데리고가시여 조국산천의 아름다움과 유구한 력사를 이야기해주시면서 애국주의사상을 심어주시였으며 아드님을 그네에 태우시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길에서 큰일을 하시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아 노래도 불러주시였다.

 

하늘은야 높고

땅은야 넓다

너는 그래 이다음에

하늘땅보다 더 크거라

 

 

- 그날의 사연 전하는 만경봉 -

 

일제경찰에 체포되신 김형직선생님께서 평양감옥에 계시던 어느해인가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데리고 면회를 가신적이 있었다.

그때 집안의 여러 사람들이 평양감옥의 스산한 광경과 철창안에 있는 아버지를 보면 어리신 아드님께서 얼마나 놀라고 마음의 상처가 크겠는가고 하면서 강반석어머님께 혼자 가실것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아버지가 겪는 고생을 보아야 원쑤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자라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생각도 커진다고 하시며 아드님과 함께 평양감옥을 찾아가시였다. 높이 둘러친 담장과 철문, 쇠살창은 물론 파수병의 검은 복장과 눈길에 이르기까지 살기가 넘치고 독기가 풍기는 감옥에서 일제교형리들의 악형으로 험한 상처를 입은 아버님을 만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금치 못하시였다.

이렇게 아드님의 성장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 강반석어머님이시였기에 어버이수령님을 조국으로 내보내여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비참한 생활을 체험하도록 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받드시여 그이를 배움의 천리길에 내세우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 우리 수령님께 기울이신 사랑은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였다. 그것은 자식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나라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전에 나라에 충정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준 진실하고 혁명적인 사랑이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천리길을 걸어 팔도구에 도착하신 아드님을 또다시 림강(당시 중국 길림성 림강시 소재지)으로 떠밀어보내신 사연은 오늘도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성품으로 보아서는 우리 수령님께서 아드님이 아니라 하더라도 열네살의 소년이 천리길을 걸어왔다면 억지로라도 불러들여 따뜻이 먹여주고 재워줄 어머님이시였다.

그처럼 마음씨가 곱고 온후하신분께서 2년만에 만나보는 아드님을 하루밤도 재우지 않고 단호히 떠나보내실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혁명의 길은 간단치 않고 어머니의 사랑 또한 쉽지 않은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에 한평생 간직되여있던 어머님의 마지막모습은 모진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사랑하는 아드님을슴없이 혁명의 길로 떠나보내시던 소사하에서의 강직하고도 숭고한 모습이시였다.

그날 병색이 짙은 어머님을 두고 차마 동구밖을 나서지 못하시는 아드님께 나라를 찾겠다고 결심품고 나선 사람이 그렇게도 집걱정이 많아서야 어떻게 대사를 치르겠는가고 준렬하게 꾸짖으시던 강반석어머님의 말씀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우리 수령님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

그날을 돌이켜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그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 대하여 잘 알고있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개와 넋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할 그런 경지에서 나를 굽어보고있었다, 그때의 모습은 차라리 어머니라기보다도 스승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 고마운 어머니를 모시고있다는 자랑으로 하여 나는 가슴이 터져나갈것만 같은 행복감을 느끼였다고 쓰시였다.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투쟁의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열하는 역경에 처하실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시기에 앞서 자신을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과 흰옷을 입고 바래주시던 어머님의 마지막모습을 회고하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시였다.

부모자식들사이에 흐르는 사랑도 맹목적인것이면 그것은 공고한 사랑이라고 말할수 없다. 사랑을 관통하는 정신이 참답고 고결해야 그 사랑은 영원하고 성스러운것으로 될수 있다. 망국의 그 시대에 우리 수령님과 강반석어머님사이에 오르내린 사랑과 효도를 줄기차게 관통한 넋은 바로 애국애족이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최후의 순간에 이런 유언을 남기시였다.

내가 죽은 후에 우리 아들 성주가 오거든 내가 대하듯 해주세요. 왜놈들이 살아있고 조선을 독립하지 못한채 오거든 내 무덤을 파가지도 못하게 해야 해요. 아니, 문전에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지요. 그렇지만 내 자식이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성주는 싸우다가 그저 돌아오지는 않을거예요. …

세상에 그 어느 어머니가 이런 유언을 남긴적 있었던가.

자신과 가정을 생각하기 전에 나라와 혁명을 먼저 생각하시는 위대한 어머님께서만이 남기실수 있는 유언이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 대를 이어가며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심어준 스승이 김형직선생님이시라면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일단 혁명을 시작한 사람은 인정에 끌리거나 곁눈을 팔지 말고 끝장을 볼 때까지 오로지 목적한바를 실현하기 위해서만 노력해야 한다는 리치를 깨우쳐준 고마운 선생이시였다.

인류력사는 강반석어머님과 같이 인간으로서 누릴수 있는 모든것을 혁명을 위해 바친 녀성혁명가를 일찌기 알지 못하고있다.

위대한 혁명가의 어머니로 한생을 꿋꿋이 살아오신 강반석어머님.

찬란한 태양을 받들어올리신 조선의 어머니 강반석어머님의 고결한 모습은 오늘도 겨레와 세계 진보적인류의 심장속에 간직되여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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