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30일
 

룡악산의 산신각과 칠성각

 

공화국의 수도 평양시 만경대구역에는 기묘한 바위봉우리가 하늘높이 치솟고 록음진 숲속에 봄이면 온갖 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드는것으로 하여 《평양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경치아름다운 룡악산이 솟아있다.

이 룡악산에는 고구려시기에 처음 세워졌고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고쳐지은 절인 법운암이 있다.

법운암 뒤뜰에는 룡악산의 산신령과 하늘의 북두칠성에게 제를 지내는 《산신각》과 《칠성각》이라 부르는 두채의 자그마한 집이 있다.

그 어느 절에 가도 본전의 부처님부터 찾는것이 관례인데 여기 룡악산 법운암에서만은 뒤뜰 별채에 있는 산신과 칠성신을 먼저 뵙는것이 관례로 되고있다.

거기에는 오늘까지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고구려 영락태왕이 선대왕들의 국토통일유지를 받들어 본격적인 남진정책을 펴고있던 때였다.

영락태왕은 겨레의 시조인 단군성왕이 태여나고 도읍으로 삼은 평양성으로 천도할 결심을 굳히고 먼저 평양성일대에 9개의 절을 짓게 했는데 첫 순서로 구룡산(대성산)과 룡악산을 정했다.

그래서 이 룡악산에 절을 지을 임무를 받고 중 아도가 이곳으로 와서 기초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첫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절터를 잡고 괭이날을 박는 순간 룡악산이 통채로 우르르 떨며 태질하는 통에 괭이질을 하였던 인부는 말할것도 없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도와 일행모두가 공중걸이로 나딩굴며 한바탕 봉변을 당하였던것이다.

후에 몇번 더 괭이질을 했다가 산아래로 굴러떨어지는통에 혼비백산하여 아도는 아예 절짓기를 단념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구룡산 북쪽기슭에 터를 잡은 절터(광법사)에서는 별다른 일없이 일이 잘 진척되고있는것이였다.

《별 괴이한 일도 다 있군.…》

아도는 다시 용기를 내여 룡악산에 가서 다른 자리를 골라 또 괭이를 박아보았으나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이럴 수가 있나.》

맥이 빠진 아도는 그만 자리에 눕게 되였다.

그런데 꿈에 웬 로인이 나타나 《그대가 여기 룡악산에 절을 짓겠거든 룡악산신과 북두칠성신에게 먼저 문안인사부터 올리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리로다. 룡악산 주봉남쪽허리에 유난히 빛을 내는 바위 두개가 보일것이니 왼쪽 바위가 산신이고 오른쪽바위가 북두칠성신이다.》라고 이르고는 사라져버리는게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아도가 허겁지겁 룡악산으로 다시 가보니 첫날 괭이를 박았던 바로 그 산허리중턱에 꿈에 로인이 알려준 두개의 바위가 보였다.

아도는 황황히 무릎을 꿇고 산신과 북두칠성신에게 인사를 올리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바위가 움씰하며 웅글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나 룡악산은 이 나라 조종의 산 불함산(백두산)의 정기를 빌어서 저 평양성지에 단군성왕이 태여나 도읍을 정하게 한 이래 지금까지 이 겨레의 발상지를 지켜오는 수호신이다. 나는 고구려가 단군성왕의 웅지를 받들어서 국토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저 겨레의 성지인 이곳 평양성으로 천도하는것을 적극 도울것인즉 불교만 생각하면서 토종신인 나를 몰라보는 망령된짓은 두번다시 없도록 할지어다.》

아도는 알겠노라 머리를 조아리며 거듭 다짐하고 이 사실을 영락태왕에게 아뢰였다.

영락태왕은 크게 깨닫는바가 있어 즉시 산신바위와 칠성바위에 자기의 이름으로 제를 지내게 하였다.

 

 

그리고 두개의 바위앞 공지에 석축을 하고 아홉개 절에 속하는 기본절이 아닌 암자를 짓고 불교학당으로 운영하게 하였는데 이 건물이 법운암이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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