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18일
 

소금생산유적과 관련하여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대답 (2)

 

최근 공화국에서 조선후국의 소금생산유적을 발굴한 소식이 보도된 이후 해외의 많은 동포들이 이와 관련하여 문의를 해오고있다.

본사편집국 기자는 동포들속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해답을 주기 위하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학부장 백용남, 연구사 교수 박사 남일룡, 강좌장 박사 부교수 리광희선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 이번에 발굴된 유적에 대해 당시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소금생산기술의 독자적인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뚜렷한 물적증거로 된다고 하였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남일룡: 그것은 조선후국의 소금생산유적과 당시 중국의 소금생산과 관련한 고고학적인 자료를 대비해보면 잘 알수 있다.

당시 중국의 사천성 중상시 충현의 중파유적과 성도에서 발견된 한나라시기의 벽돌에 새겨진 소금생산그림을 보면 모두 소금우물에서 퍼낸 염수를 직접 썼다는것을 알수 있다. 소금물을 끓이는 시설은 5~6개의 원형가마들을 련달아 길게 설치한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농도가 낮은 바다물을 그대로 여러개의 가마에서 차례로 증발시키는 방법으로 소금을 생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선후국에서는 바다물을 농축한 후 하나의 가마에서 졸여 결정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었다.

앞서 이야기하였지만 이번에 발굴한 소금생산유적에서 재가 많이 나오고 특히 물웅뎅이안에 두터운 재층이 깔려있는것은 다른 소금생산유적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것으로서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독특한 소금농축방법을 보여준다.

이번에 밝혀졌지만 당시 조선후국사람들은 바다물을 직접 끓이는 방법이 아니라 식물이나 재를 리용하여 1차적으로 농축한 다음 끓여서 소금을 얻어내는 높은 수준의 바다소금생산기술을 소유하고있었다.

바다물은 그 농도가 약 3%정도이므로 이것을 그대로 끓여서 소금을 얻자면 많은 연료와 시간이 소비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조선후국시기에 벌써 바다물을 농축하는 방법을 창안하고 그에 기초하여 많은 소금을 생산하고있었다.

그 방법을 보면 우선 주변에 흔한 바다마름이나 갈대와 같은 식물들을 많이 베여다가 약간 말리운 다음 밀물때 들어온 바다물속에 잠그어 놓는다. 썰물이 진 후 식물의 가지와 잎에 묻었던 바다물이 증발하면 겉면에 하얀 소금분말이 생겨나는데 이것을 밀물때 웅뎅이안에 잡아둔 바다물에 헹구면 그것이 웅뎅이안의 소금물에 풀려 소금물농도가 높아진다.

또한 바다마름과 같은 식물을 숯에 가깝도록 태워 얻은 재를 바다물이 들어오는 낮은 곳에 깔아놓고 거기에 슴배인 바다물을 증발시키면 겉면에 소금분말이 생기는데 이것을 긁어다가 바다물웅뎅이안에 넣어 재에 섞인 소금이 풀리게 하는 방법으로 소금물농도를 높였다.

소금생산유적에서 재가 많이 나오고 특히 물웅뎅이안에 두터운 재층이 깔려있는것은 당시에 우와 같은 방법으로 바다물을 농축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소금생산방법을 소유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물적증거로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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