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월 22일
주체105(2016)년 12월 4일
 

갑신정변

 

오늘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날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전을 반영하여 싹트기 시작한 부르죠아사조인 개화사상은 19세기 60년대를 전후하여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70년대초에는 김옥균(1851―1894)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개화파가 형성되였다. 개화파는 비밀결사형식의 조직인 《충의계》를 뭇고 여기에 각계각층을 묶어세웠다.

그들은 외래침략을 막고 국권을 수호하며 봉건제도를 혁신하고 나라를 근대적으로 발전시키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개혁활동을 벌리였다.

초기 국정개혁의 방법으로 부르죠아개혁운동을 추진시키려고 시도했지만 내외반동세력의 반항에 부닥치게 되자 개화파들은 정변의 방법으로 개혁운동을 벌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당시 조선문제를 둘러싸고 대립되여있던 청일간의 모순을 리용하여 수구파반동정권을 뒤집어엎을 계획을 세웠다. 정변은 1884년 12월 4일 우정국청사락성축하연을 계기로 수구파관료들을 처단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개화파는 수구파정권을 전복하고 12월 5일 새 정부구성을 공포하였으며 6일에는 14개 조항으로 된 새 정부의 정강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정강에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사회정치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낡은 봉건제도를 자본주의제도로 개혁할것을 제기하였다.

개혁사업이 추진되고있을 때 수구파잔당들과 결탁한 청나라군대는 불의에 개화파정부를 공격하였다. 이때 왕궁수비에 일시 리용되였던 일본군대가 약속을 배반하고 철수하였다. 개화파들은 얼마 안되는 무장력으로 완강히 대항하였으나 우세한 청나라군대를 당해낼수 없었다. 이리하여 갑신정변은 《3일천하》로 끝나게 되였다.

김옥균은 1894년 상해에서 암살되였다. 수구파반동들은 그의 시체를 서울로 끌어다가 참형을 가하였다.

우리 나라의 첫 부르죠아개혁운동이였던 갑신정변은 부르죠아민족운동발전을 고무추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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