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2월 1일

민속놀이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부지런하고 락천적이고 정서적인 생활을 지향하여왔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서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기질을 반영한 락천적인 민속놀이들을 수많이 창조하였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에 벌써 민속놀이들이 널리 발전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민속놀이가 명확한 기록으로 전해지는것은 고구려시기부터이다. 덕흥리무덤벽화에 생동하게 그려진 활쏘기경기장면, 씨름무덤의 벽화에 씨름을 하는 장면, 안악3호무덤을 비롯한 여러 무덤벽화에 수박희(손치기)를 하는 장면 등이 그려져있는것으로 보아 고구려때에 말타기와 활쏘기, 씨름, 손치기같은 활기있는 놀이들이 널리 일반화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런 놀이를 즐겨온 고구려사람들은 강한 체질과 의지를 가지고있었고 곤난을 이겨내며 어떠한 침략도 단숨에 물리치고 민족의 영예를 지켜냈다. 삼국시기의 사실을 전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옛 기록들은 세 나라에서 활쏘기, 말타기, 손치기, 돌팔매놀이, 줄당기기, 제기차기와 같은 경기놀이들과 함께 윷, 바둑, 쌍륙 등의 겨루기놀이를 하였으며 탈놀이, 길쌈놀이 등의 가무를 하였다는것을 전하고있다.

놀이의 발전은 여러가지 오락기구와 민족악기의 발전을 동반하였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세 나라에는 가야금, 쟁(아쟁, 탄쟁, 국쟁), 공후(와공후, 수공후), 의취적, 횡적, 생, 소, 피리(대피리, 소피리) 등 관현악기와 크고작은 여러가지 북 등이 있었다. 여러가지의 독특한것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민이 높은 문화적소양을 가지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민속놀이들은 삼국시기를 거쳐 고려시기에 더욱 널리 보급되였다. 삼국시기의 등놀이는 고려시기에 와서 큰 국가적인 행사였던 팔관회와 연등회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야외무대를 만들고 무대두리에 수많은 등을 달아 장식하였으며 거리와 마을에도 갖가지 등을 내걸고 춤과 노래로 즐기였다. 고려시기에는 또한 발해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말타기와 구기를 배합한 격구가 널리 진행되였으며 장기도 놀았다는 기록이 처음 보인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는 앞선 시기부터 전하여오던 놀이들이 더욱 세련되고 발전되였으며 새로운 놀이가 창조보급되였다. 특히 승부를 가르는 형식을띤 놀이들이 경기로서 더욱 세련되였으며 람승도, 종정도, 수투, 시패, 가투, 고을모둠 등 적지 않은 새로운 놀이들이 퍼져나갔다.

민족성이 날로 활짝 꽃펴나고있는 우리 조국에서는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크나큰 은정속에 그 어디에 가나 민속놀이를 즐기는 우리 인민의 랑만과 희열에 찬 모습이 펼쳐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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