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9월 12일
 

세계적인 명승 - 금강산

 

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은 우리 나라에는 뛰여난 명승지가 많고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금강산은 으뜸가는 천하절승으로서 조선의 명산이며 세계적인 명산이다.

 

 

우리 나라의 동해안 중부 태백산줄기의 북부에 있는 금강산은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에 걸쳐 남북의 길이 60㎞, 동서의 길이 40㎞, 면적 530k㎡의 광대한 지역에 자리잡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가는 곳마다에 소문난 명승지들이 많은데 명승지들에 휴양소와 정양소, 야영소들도 건설하고 인민들이 늘 찾아와 마음껏 즐기며 놀수 있게 잘 꾸려놓아야 합니다.》

금강산은 다양하고 웅장하며 수려하고도 기이한 천태만상의 자연경관을 이루고있어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5대명산》(선군시대에 와서는 6대명산)의 하나로, 《조선팔경》, 《3신산》의 하나로 일러왔다.

금강산은 하늘을 찌를듯이 톱날처럼 늘어선 1만 2천봉과 각양각색의 모양을 닮은 기암들, 거대한 층암절벽들과 서로 다른 깊은 계곡들 그리고 여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담소와 못들, 절벽과 바위들을 감돌아 흘러내리는 구슬같은 맑은 물, 무지개를 이루며 쏟아져내리는 무수한 폭포들, 다양한 동식물상과 록음 등이 서로 잘 어울려서 한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뿐만아니라 금강산은 산악미, 계곡미, 고원경치, 전망경치, 호수경치, 바다와 해안경치 등을 다 갖추고있어 단순한 하나의 명승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아름다운 명승을 한곳에 모아놓은 명승지의 집합체를 이루고있다. 그러므로 금강산은 오랜 력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풍악》, 《개골》, 《상악》, 《선산》, 《봉래》, 《기달》, 《널반》, 《중향성》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고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온갖 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봄날의 금강산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보석에 비기여 《금강산》, 봉우리와 층암절벽을 감도는 흰 구름과 울창한 록음, 갖가지 아름다운 새소리와 폭포소리 요란한 여름의 금강산을 《봉래산》, 온 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불타고 벽계수 흐르는 가을의 금강산을 《풍악산》, 바람이 불고 온 산이 눈꽃과 얼음기둥으로 덮이여 특이한 경치를 이루는 겨울의 금강산을 《개골산》이라고 불러왔다.

계절과 시간,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천태만변하는 금강산에 대하여 예로부터 《돌이 만가지 재주를 부리고 물이 천가지 재롱을 피우며 나무 또한 기특하니 천하절승이 여기 다 모인것 같다.》는 말까지 전해오고있다. 이러한 금강산은 수천년전부터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력사의 갈피를 헤쳐보면 강, 바다, 벌을 끼고있는 금강산일대에서는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고 한다. 태백산줄기의 높은 령들을 넘나들면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인민들의 창조적로력투쟁에 의하여 금강산이 개척되였으며 7세기말엽부터는 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금강산은 동방에서 그 《성지》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였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스님들과 신자들의 순례장소로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 인민들은 자기의 지혜와 예술적재능을 다 바쳐 유점사, 표훈사, 장안사, 신계사, 정양사를 비롯한 수많은 절들과 불상조각들, 탑, 비, 부도를 비롯한 문화재들을 창조하였으며 전설과 시, 노래, 회화작품들을 수많이 남기였다.

16세기말엽부터 진보적학자들속에서는 금강산의 력사, 지리, 문화에 대한 연구사업이 시작되였다. 그리하여 《금강산을 보기전에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였으며 전국 각지의 명승지들에는 《해서(황해)금강》(장수산), 《함경금강》(칠보산), 《의주금강》(석숭산), 《동래금강》(금정산) 등 금강산과 대비하여 별명을 붙이는 일도 생겨나게 되였다.

어떤 나라의 시인은 조선의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 인민들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금강산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력대 봉건통치배들의 가혹한 착취와 압박으로 말미암아 금강산구경이란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이런 연고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까지 나오게 되였다. 도리여 금강산지구 인민들은 봉건통치배들의 공물진상, 길안내, 가마메기, 짐운반 등 로력적부담만 걸머지게 되여 《산이 어찌하여 다른데 있지 않고 우리 고장에 있어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라는 원망까지 하게 되였다고 한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침략자들은 금강산에서 수많은 문화재들과 중석을 비롯한 많은 지하자원을 략탈하여갔을뿐아니라 수백년 자란 나무를 마구 찍어내여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였다.

세계적인 명승 금강산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시여 민족재생의 새봄을 안아오신 그때로부터 진정한 인민의 금강산으로 되였다. 그러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의 야만적인 무차별폭격과 포격으로 하여 장안사, 유점사, 신계사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들과 귀중한 문화재들이 불타버렸으며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많이 파괴되였다.

오늘날 금강산은 절세위인들의 은정깊은 보살피심과 사랑속에 인민의 유원지, 세계적인 관광지로 훌륭히 복원되여 조선의 명산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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