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7월 19일
 

선죽교와 정몽주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주체81(1992)년 5월초 개성시에 있는 력사유적들을 돌아보시면서 선죽교에도 들리시였다.

선죽교는 왕건이 919년에 개성을 수도로 정하고 도시를 꾸릴 때 화강석을 다듬어놓은 너비 3. 36m, 길이 8. 35m의 크지 않은 돌다리이다. 

선죽교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죽교에 깃들어있는 력사자료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죽교는 원래 선지교라고 하던것을 1392년 4월 고려의 대학자이며 최고관리였던 정몽주가 리성계일파에 의하여 철퇴에 맞아 살해된 다음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났다고 하여 선죽교라고 불렀다고 그 유래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죽교에 깃든 다음과 같은 사연에 대하여 하나하나 상세히 말씀하시였다.

고려시기에 고위관리였던 정몽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왕에게 충의를 다하였다.

당시 고려왕조를 뒤집어엎고 왕위에 오르려는 야심을 가지고있던 리성계일파는 정몽주를 우환거리로 생각하였다.

이들은 왕에게 충실한 정몽주를 끌어당겨야 자기들의 야심을 쉽게 실현할수 있다는것을 타산하고 그의 마음을 돌려세워보려고 여러모로 노력하였다. 하루는 리성계의 다섯째아들(리방원)이 그를 청해다 이런 시를 읊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와 같이 얽어져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것은 너하고 나하고 결탁하여 고려왕조를 뒤집어엎고 부귀영화를 백년까지 누리자는 뜻이였다.

그러자 정몽주는 이런 시조를 읊었다.

 

이몸이 죽고죽어 열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없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이 시에는 자기가 죽어서 뼈가 먼지와 흙이 될지언정 왕한테 향한 한번 먹은 마음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뜻이 담겨져있다.

정몽주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간파한 리성계의 아들은 졸개놈들을 선죽교밑에 숨겨놓았다가 정몽주가 다리를 건늘 때 그곳에서 살해하였다.

조선봉건왕조통치배들은 정몽주가 리왕조를 반대한 사람이지만 그를 내세워 인민들과 봉건관료들을 왕에 대한 충의사상으로 교양하기 위해 이곳에 정몽주표충비까지 세워놓았던것이다.

이런 력사이야기를 들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을 쪼아 만든 거북의 잔등우에 세운 표충비는 귀중한 력사유물인것만큼 잘 보존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수행한 일군들과 력사학자들은 그이께서 지니고계시는 력사에 대한 폭넓고 해박한 지식앞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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