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7월 13일
 

선조들이 오랜 기간 사용해온 길수 《8》

 

수 《8》은 《3》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오랜 기간 길수로 여기며 사용해온 수이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은 B. C. 30세기초에 동방에서 처음으로 문명국가를 세우고 나라의 기틀을 꾸렸는데 그때 제정한 중앙관료체제에는 《단군8가》로 불리우는 대신급 관료들이 있었다.

왕 다음가는 최고관직으로 모든 관료들을 총괄할 위임을 맡은 《호가》, 각종 문서, 지시관계 업무를 맡은 《마가》, 군사를 맡아본 《웅가》, 형벌을 담당한 《응가》, 각종 의례를 맡아본 《학가》, 보건을 담당한 《로가》, 지방행정을 맡아본 《구가》 등 《단군8가》는 단군의 정사를 도와 국력강화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당시 고조선의 유명한 성문법인 《범금 8조》도 8개의 법조문으로 되여있었는데 이것 역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위법행위를 8가지로 전형화하여 형벌을 적용한것은 수 《8》을 중히 여기고 널리 써온 관습의 표현이다.

우리 선조들의 이러한 미적감정은 남부조선지역에서 발굴된 《팔수형방울》을 통해서도 엿볼수 있다.

여덟개의 가지끝에 방울이 달리고 그 겉면에 섬세하게 장식을 한 청동팔수형방울은 고대시기 청동주조기술의 발전수준을 보여줄뿐아니라 굳이 8개의 가지와 방울로 권력과 재부의 상징물을 만들어낸 우리 선조들의 미적감정세계를 느낄수 있게 한다.

고대시기부터 길수로 여겨오던 수 《8》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애착은 중세 전기간 련면히 이어져 이름난 학자들과 문인들의 시어속에, 우리 인민의 언어생활속에 력력히 자취를 남겼다.

고구려시기 구전문학유산의 하나인 《금강산 8선녀》전설에서 하늘나라 선녀들과 금강총각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노래했다면 고려시기 문인 리규보의 시에 나오는 《송도8경》에서는 조국강산의 수려함을 8개소의 뛰여난 경치로 전형화하고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치도 상팔담이요, 관동, 관서지방의 명승도 《관동8경》, 《관서8경》이며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무수한 8경들이 있어 저마끔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산좋고 물맑은 평양의 경치를 담은 《을밀상춘》(을밀대의 봄경치), 《부벽완월》(부벽루가 대동강에 비낀 달밤의 풍경), 《련당청우》(애련당에 내리는 비소리), 《보통송객》(보통강나루터에서 떠나는 나그네를 바래워주는 풍경), 《룡산만취》(룡산의 사철푸른 나무가 늦은 가을에도 푸르러있는 풍경), 《거문범주》(수레문에서의 배놀이), 《마탄춘창》(이른봄 대동강의 여울 마탄의 눈석이물이 넘쳐서 소용돌이치는 풍경) 등의 《평양8경》은 8경중에서도 손꼽히는 8경의 하나이다.

수 《8》과 관련한 말들은 또한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성구속담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세살적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여드레 팔십리걸음》, 《팔년병화》(여러해동안 겪는 전란), 《팔난봉(가지각색의 난봉을 다 부리는 사람)에 뫼 썼나》, 《팔준마(력사적으로 이름있다고 하는 여덟마리의 준마)라도 주인을 못만나면 삯마로 늙는다》,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 《팔방돌이하다》, 《팔십로인도 세살먹은 아이한테 배울것이 있다》, 《사돈의 팔촌》 등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리 인민들은 《8》을 언어생활의 이모저모에서 효과적으로 리용하였다.

이처럼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이 널리 써온 수 《8》에 깃든 류다른 애착과 민족적정서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풍만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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