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6월 24일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우리 민족사의 갈피에는 력사에 이름을 남긴 학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중에는 김정호도 있다. 그는 19세기중엽의 재능있는 지리학자이며 실학자이다.

서민층에서 태여나 서울교외에서 자라난 김정호는 일찍부터 지리학 및 지도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였다. 그는 국방을 강화하고 인민들에게 자기 국토를 잘 알도록 하기 위하여 정확하고 상세한 전국적인 지도를 만들것을 결심하고 여러가지 곤난을 무릅쓰고 지도제작에 달라붙었다. 김정호는 근 10년에 걸치는 현지답사와 조사연구, 선행시기 지도제작성과에 기초하여 1834년에 《청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에서는 산의 위치와 산줄기, 강과 호수의 위치와 형태 등 자연지리만이 아니라 력사지리와 경제지리내용들까지도 일정하게 주었다. 그러나 《청구도》는 너무 번잡하고 도면구성이 착잡하였으며 일부 자료들은 부정확하였다. 이러한 부족점을 느낀 그는 새로 정확한 지도를 만들것을 생각하였다.

김정호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근 30년동안 백두산으로부터 제주도에 이르는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현지조사와 측량, 측정사업을 했으며 백두산에도 두번씩이나 오르내렸다.

그리하여 1861년에 축척 16만 2 000분의 1의 조선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제작출판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우리 나라 전지역을 위도선에 따라 22개 부분으로 나누고 그 하나를 한책으로 접어서 첩본으로 만든 근대적인 체계를 갖춘 지도였다.

그는 지도에 반영해야 할 대상을 결정하는데도 큰 주의를 돌렸다. 지도에는 자연지형(산, 령, 고개, 벌, 굴, 강하천, 샘, 호수, 강하구), 정치행정적요소(행정중심지, 창고), 군사교통요소(군영, 진보, 성새, 봉수, 역참, 나루, 교량), 경제문화적요소(특산지, 목장, 소금밭, 조운), 력사고적 등이 기호화되여 상세히 기록되여있다.

특히 나라의 상업과 교통운수를 발전시키며 외래침략자들의 침공을 막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것들에 더욱 큰 주의를 돌렸다. 도로를 표시하는 줄우에 10리를 사이에 두고 점을 찍어놓은 사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1864년에 그는 《대동여지도》의 재판과 함께 이 지도제작과정에 얻은 조사자료와 문헌자료에 기초하여 지리지인 《대동지지》(32권 15책)를 편찬하였다.

그는 《대동지지》에서 인구통계, 군대배치, 전세부역관계, 장시, 공납, 배길, 역참, 풍속 등 37개 항목에 걸쳐 고을별로 체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대동여지도》의 내용을 보충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지도제작에서 중세기적인 틀을 벗어못난 일련의 부족점도 있다.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은 그가 지도를 작성함으로써 국가비밀을 루설했다는 부당한 죄명을 씌워 체포구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옥중고초를 겪다가 감옥에서 죽었다.

김정호는 이처럼 19세기중엽 우리 나라의 지리학 및 지도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자였으며 실학자였다. 그가 만든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는 그의 실학적학풍을 잘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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