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4월 11일
 

인류의 경사로운 환희의 봄명절로 더욱 빛날것이다 (1)

 

만민이 우러르는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인 4월 15일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인류공동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태양절에 즈음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서는 제3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진행되게 된다.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세기를 이어오며 성황리에 진행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만민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대서사시적화폭으로 펼쳐지게 되는 축전무대와 더불어 온 나라에 울려퍼지는 위인찬가, 태양칭송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강산에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노래가 울려퍼지도록 하기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가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충정의 날과 달들이 감회깊이 돌이켜진다.

그가운데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위인칭송의 노래인 불후의 고전적명작 《충성의 노래》를 지으시기 위해 바쳐오신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하는 잊지 못할 나날도 있다.

주체58(1969)년 2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과 음악창작가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지금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담은 노래와 현실주제의 새로운 명곡들이 별로 없습니다.

영화음악창작가들이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흠모의 정을 담은 노래와 다양한 현실주제의 노래들을 창작하는데서 시범을 창조하여야 하겠습니다.》

음악창작가들이 그이께서 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받들고 떨쳐나섰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달이 가고 두달, 석달이 넘도록 신통한 노래를 내놓지 못하였다.

안달이 난 그 일군은 하루가 멀다하게 창작가들을 만나 창작정형을 료해하면서 재촉하였다. 그랬어도 여전히 이렇다 할 명곡은 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11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침일찍 그 일군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그에게 어서 앉으라고 하시더니 뜻밖에도 무엇인가 책상우에 내놓으시며 수령님을 칭송하는 노래가사를 하나 지어보았다고 하시는것이였다.

그 일군은 달아오르는 마음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위대한 장군님의 존안에는 피로가 확연하였으나 그이께서는 더없는 행복감에 넘쳐계시였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몸소 창작하신 가사를 손에 들고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수령님에 대한 송가가 많지 못합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직 우리가 수령님의 혁명전사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있다는 무거운 자책감을 금할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퍼그나 갈린 음성으로 수령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에 만경대를 떠나신 그날로부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준엄한 혁명의 불바다, 피바다를 헤쳐오시였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백두의 찬눈비속에서 천만고생을 다 겪으시며 일제를 때려부시고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신데 대하여, 해방후에는 건국의 초행길을 걸으시며 조국땅우에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우신데 대하여 이야기하신 다음 《실로 우리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혁명의 길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험난한 가시덤불길이였고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간고하고 시련에 찬 길이였습니다.》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방안에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정이 뜨겁게 흘렀다.

동안이 지나 장군님께서는 국가중창단에서 녀성기악8중주로 형상하여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그 기악곡에 가사를 붙여보았다고 나직이 교시하시였다.

일군은 격정을 묵새기며 그이께서 몸소 지으신 가사를 받아들었다. 활달한 필체로 씌여진 가사의 제목은 《충성의 노래》였다.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시고

혁명의 수만리길 걸어오셨네

내 조국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인민들은 일편단심 충성을 맹세하네

 

찬이슬 맞으시며 농장을 찾으시고

눈오는 이른새벽 공장을 찾으시네

크나큰 그 은덕은 만대에 길이 빛나리

인민들은 심장으로 충성을 노래하네

 

3천리 내 조국에 해빛은 찬란하고

행복의 노래소리 넘쳐흐르네

통일된 강산에서 인민들은 대를 이어

위대하신 수령님 모시고 천만년 살아가리

 

눈물속에 가사를 읽고난 일군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였다.

우선 가사에서 받아안은 충격이 너무도 컸기때문이였고 다음은 그 가사가 태여나기까지에 바쳐진 장군님의 로고가 너무도 가슴뜨겁게 안겨와서였다.

일군의 눈앞으로는 지나간 일들이 삼삼히 떠올랐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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