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악산의 세그루 은행나무
룡악산 법운암 앞뜰에는 세개의 원줄기가 마치도 한뿌리에서 솟은것처럼 보이는 세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있다.
2017-07-20
룡이 내린 산 (2)
룡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은데는 이런 전설이 전해져내려오고있다.
2017-04-18
2017-04-17
룡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은데는 이런 전설이 전해져내려오고있다.
룡악산의 산신각과 칠성각
그 어느 절에 가도 본전의 부처님부터 찾는것이 관례인데 여기 룡악산 법운암에서만은 뒤뜰 별채에 있는 산신과 칠성신을 먼저 뵙는것이 참 이상하지 않는가.
2017-03-30
2017-02-03
전설이 전하는 북새동의 모래터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릉라도에 깃든 옛 전설
명승지인 릉라도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원래 릉라도는 모란봉 청류벽앞 대동강에 있은것이 아니라 대동강중류인 성천읍 관내 비류강에 있었는데 몇백년전 큰 홍수때 평양으로 떠내려온것이라고 한다.
2016-07-27
동명왕릉을 지키는 로인
전설에는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제일 강대한 국가였던 고구려 동명왕을 신성시하고 그의 무덤을 귀중히 여기며 지켜온 선조들의 애국심이 반영되여있다.
2015-12-20
도라지에 깃든 옛 전설
오늘 우리 나라의 산 어데서나 볼수 있는 도라지꽃은 옛날 도씨성과 라지라는 이름을 가진 금강산의 한 처녀의 불우한 이야기를 담고있으나 로동당시대에 와서 그 누가 보는이 없어도 순결한 량심을 바쳐가는 깨끗하고 참되고 훌륭한 인간들의 모습과 결부되여 아름답게 불리워지고있다.
2015-10-20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라는 속담은 금강산에서 나무하러 다니던 강생이라는 사람이 신선들이 노는 바둑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날이 흘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생겨난 말이다.
2015-09-13
2014-12-01
묘향산 칠성봉 동쪽 산허리에는 향산8경의 하나로 꼽히우는 설령대가 있다. 이 설령대에는 저대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옛날 단풍이 붉게 타던 어느해 가을이였다. 유람을 즐기던 순찰사 구봉서는 이름있는 저대연주가 전성발과 녀가수 복춘이를 데리고 묘향산을 찾았다....
2014-12-01
옛날 어느 고을에 김양옥이라고 하는 선비가 살고있었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10여년동안 글만 배우다나니 집안에는 얼마 없던 재산이 걸덜이 났다. 엎친데 덮치는격으로 처까지 세상을 떠나고 끼니도 끓일수 없게 되여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어느날 어머니는 옷장안에서 족자 하나를 아들앞에 꺼내놓으며 위로의 말을 하였다....
2014-12-01
태자는 아버지를 설득시킬수 없다는것을 알고 군사를 일으켜 고려와 싸우든지 아니면 금강산 골안에서 중이 되여 일생을 깨끗이 바치든지 둘중의 한길을 택하리라고 생각하였다....
2014-12-01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왕으로 즉위하자 갑자기 귀가 노새귀처럼 길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도 몰랐으나 오직 두건만드는 쟁인바치만이 알고있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있다가 림종에 도림사의 참대숲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데서 크게 웨쳤다고 한다.
2014-12-01
먼 옛날 평양에는 발이 사슴의 발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록족부인》이라고 불리우는 한 녀인이 살고있었다. 그런데 그의 두 아들도 어머니를 닮아 발이 사슴의 발과 같았으므로 동네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군 하였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동네아이들과 함께 놀지 말고 집뜰안에서 무술놀이나 하라고 하였다....
2014-12-01
평양의 모란봉 서남쪽에 있는 칠성문은 예로부터 《행복의 문》으로 불리웠다. 칠성문이 《행복의 문》으로 불리우게 된것은 나라를 지켜싸운 한 젊은이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면서 생기게 되였다고 한다. 먼 옛날 평양성안에는 돌범이라는 총각과 시내라는 처녀가 살고있었다....
2014-12-01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세운 을밀대에는 을밀장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을밀장군은 뛰여난 무술과 용맹, 슬기로운 지략으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인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세월은 흘러 로년기에 이르게 되자 을밀장군은 아들인 나래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무술을 배워주었고 일정한 수준에 이른 다음에는 3년 석달을 말미로 산중에 보내여 무술을 익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