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월 22일

주택생활풍습

주택의 발전

최초의 원시인들은 눈, 비, 바람이나 맹수, 해충 등의 피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연동굴을 거처로 하여 거기에 모여살았다. 고대 우리 나라 주택에서는 그 형태와 시설들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이루어졌다. 봉건사회에 이르러 발전하는 과학과 문화, 생산력의 발전, 변화된 사회제도 등 사회의 발전과 함께 살림집도 집채의 구성과 형태, 꾸밈새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시기 주택생활풍습에서 주목되는것은 삼국시기에 이미 우리 나라의 민족적인 주택생활풍습의 기본양식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고려시기를 거쳐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더욱 발전된 우리 나라의 고유한 주택생활풍습으로 된것이다.

집짓는 풍습

우리 나라의 집을 짓는 풍습에는 집터를 닦고 골격을 세우며 지붕을 올리고 벽체를 만들며 온돌을 놓는것 등이 포함된다.

주택의 류형과 형태

우리 나라의 주택은 오랜 력사적과정에 여러가지 류형을 이루며 다양한 형태로 형성발전하여왔다. 지난날 우리 나라의 주택들은 룡마루를 중심으로 방들을 한줄로 배치하는것과 두줄로 혹은 세줄로 배치하는것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바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외통집, 량통집, 세겹집이다. 외통집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방과 개성, 서울 등 중부조선일대와 남쪽지방에 널리 보급되여있었다. 방배치를 한줄로 하는 외통집에는 몸채만으로 된 외채집, 몸채와 부속건물을 두줄로 배치한 쌍채집, 방과 경리시설을 몸채에 붙여서 《ㄱ》, 《ㄷ》모양으로 배치한 꺾음집, 《ㅁ》형으로 배치한 똬리집이 있었다.

량통집은 외통집과는 달리 한 룡마루밑에 방들이 겹으로 배치된 형태의 집이다. 방을 두줄로 배치하는 량통집은 정지간이 있는것, 봉당이 있는것, 대청이 있는것 등 세가지 류형으로 갈라지는데 이것들이 서로 분포지를 달리하므로 흔히 북부형, 중부형, 남부형으로 부른다. 정지간이 있는 량통집은 주로 함경도일대(함경남북도와 량강도)에 분포되여있었으며 이 류형의 집들을 북부형이라고 한다. 봉당이 있는 량통집은 강원도지방과 황해도의 동쪽 일부 산간지대에 있던 집들이므로 그것을 중부형이라고 한다. 대청이 있는 량통집은 남해안일대에 있는 집들이므로 남부형이라고 한다. 세겹집은 가운데 봉당이 있다는 점에서 중부형과 같으나 방들이 세줄로 배치되여있으며 봉당을 중심으로 살림방들과 경리시설들이 나뉘여져있었다. 세겹집은 외통집과 량통집이 겹쳐지는 지방에 분포되여있었을뿐아니라 그 방배치에서 외통집과 량통집의 특징이 겹쳐져있는것으로 보아 외통집과 량통집이 합쳐진 하나의 변형이였다.

집의 리용과 꾸림새

우리 나라의 주택은 크게 살림방과 부엌, 경리시설, 정원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살림방에는 큰 방(아래방), 웃방, 새방, 건넌방, 대청마루방, 사랑방, 행랑방 등이 있었다. 큰 방은 흔히 녀자들이 리용하였는데 여러 세대가 한 집에서 사는 경우에는 주로 늙은 세대와 손자들이 리용하였다. 큰 방에는 보통 《룡다리》와 선반, 시렁, 홰대 등이 있었다. 웃방은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사는 경우에 주로 젊은 부부들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리용하였다. 그러므로 이 방에는 주로 젊은 부부들이 결혼할 때에 장만한 장, 궤 등 새로운 생활용품들이 놓이게 되고 비교적 깨끗하게 꾸리는것이 보통이였다. 사랑방은 보통 가장인 늙은 로인(남자)이 리용하면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동리로인들이 모여서 노는 장소로 혹은 글방으로 리용하였다. 사랑방에는 벽장이나 간단한 선반과 함께 책상, 서사도구, 화로 같은것들이 갖추어져있었다. 대청은 개성지방과 그 이남지방의 특유한 마루방으로서 주로 여름철에 리용하였다.

주택생활에서의 례절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이웃에서 집을 지을 때면 집터를 닦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집을 다 지을 때까지 자기들의 생활형편에 맞게 그것을 도와주는것을 이웃간에 지켜야 할 도덕적의무로, 례의범절이 바른 소행으로 여겼다. 우리 나라 주택생활풍습에는 또한 집들이를 할 때에 이웃간에 지켜지는 례절이 있었다. 집을 리용하는데서도 여러가지 아름다운 례절을 지켜왔다. 방으로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신발을 밖에 벗어놓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며 밖으로 나올 때에도 역시 출입문을 조용히 여닫는것은 우리 인민이 예로부터 지켜온 하나의 례절이였다.

또한 가정에서 방의 아래목은 로인이나 웃사람에게 권하고 젊은이들은 웃목이나 웃방에 자리를 차지하는것을 례절로 지켜왔다. 또한 예로부터 이웃집을 방문할 때 반드시 밖에서 주인을 찾고 응답이 있을 때에만 집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며 주인이 권하는데 따라 자리에 앉아서 용무를 보는것을 례절로 지켜왔다. 이러한 례절은 손님을 친절히 맞이하는 풍습에서도 찾아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