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복은 해방전시기부터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족의 넋을 안겨주는 신민요와 민요가창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온 오랜 민요가수의 한사람이다. 2014-12-01
인민배우 김진명(1914-1997년)은 해방후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은혜로운 조국의 품속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 민요가수로, 음악창작가로서 조선민족음악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한 오랜 민족음악가의 한사람이다. 2014-12-01
주체64(1975)년 1월 인디아의 칼커타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프랑스, 마쟈르, 남조선, 중국선수들을 모두 이기고 영예의 1등을 쟁취하여 금메달과 우승컵을 받고 인디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왕관, 왕띠와 함께 《세계탁구녀왕》의 칭호를 받았다. 2014-12-01
그는 주체53(1964)년 2월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그에서 진행된 제9차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여 3 000m경기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2014-12-01
《만경대상》체육경기대회 녀자마라손경기에서 3번에 걸쳐 1위, 공화국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2번 1위쟁취, 주체88(1999)년 8월 29일 에스빠냐의 세빌랴에서 진행된 세계 2 044개 나라와 지역에서 온 2 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제7차 세계륙상선수권대회 녀자마라손경기에서 42. 195km를 2시간 26분 59초동안 달려 단연 1등의 영예를 지녀 세계녀자마라손최우수선수로, 세계《마라손녀왕》으로 되였다. 2014-12-01
주체53(1964)년 2월부터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서 방송원으로 일하고있다. 어려서부터 화술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있던 그는 당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으며 소년방송원으로 방송을 잘하여 널리 알려졌다. 2014-12-01
해방후 함경북도 성진방송국 방송원으로 있다가 주체36(1947)년부터 평양중앙방송국(후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원으로 일하였다. 2014-12-01
남강원도 춘천시 아동리의 종살이하는 가정에서 출생하여 춘천정명녀학교를 졸업하고 12살때부터 미국선교사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였다. 1935~1937년에 개성남성병원 간호원으로 있다가 배우가 되고싶은 희망을 안고 1938~1945년에 서울에 있는 청춘좌, 고협, 성군 등 극단에 들어가 처음에는 심부름군으로 일하다가 배우가 되였다. 2014-12-01
주체61(1972)년부터 평양예술단 배우로, 주체68(1979)년부터 조선인민군 4. 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활동하였다.그가 주인공 및 주역으로 출연한 대표적인 작품들로 《종군기자의 수기》(1982년), 《그들의 모습에서》(1985년), 《새 정권의 탄생》(1986년), 《곡절많은 운명》(1989-1995년),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6-10부, 1992년) 등이 있다. 2014-12-01
해방후 함남도립극장과 국립영화촬영소, 국립극장,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평양연극영화대학 겸직교원으로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우가 되고싶은 꿈을 가지고있던 그는 해방을 맞아 드디여 그것을 실현할수 있었다. 2014-12-01
모르는것이 행복의 대명사로 되고있는 사회. 우리 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사는 가정들은 국가로부터 살림집을 무상으로 받는다 2014-11-22
성스러운 조국보위의 길에서 뜻하지 않게 부상당한 영예군인을 친혈육처럼 여기며 따뜻한 정과 사랑을 부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온 나라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우리 사회의 고유한 모습이고 이 땅 그 어디 가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일이다. 2014-11-21
모란봉악단으로 하여 우리의 생활은 더욱 약동하고 우리 인민의 포부와 리상은 더 원대해지고 아름다와졌다 2014-11-20